유가폭등에 경제대응 시간 번 효과
공급다변화 등 정상화 추진 나서야

미·이란 전쟁 이후 국제유가 상승과 공급 불안이 가계와 기업을 압박하자 각국은 가격상한, 보조금, 감세, 비축유 방출 등으로 대응했다. 한국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도 이러한 비상조치의 하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아니라, 지난 7개월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을 지켰고 어떤 비용을 남겼는지 평가하는 일이다.
가격관리 정책의 장점은 분명하다.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연료의 가격이 급등할 때 가계 구매력을 보호하고 운송·배송·농어업 등의 비용 충격을 완충한다. 기업에는 계약과 생산계획을 조정할 시간을, 정부엔 대체 공급처를 확보할 시간을 벌어준다. 국제가격의 충격이 국내 가격에 한꺼번에 반영되는 것을 늦춘다는 점에서 비상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가격을 누른다고 수입 원유의 조달 비용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덜 부담한 비용은 정유사나 정부로 이전된다. 손실을 제대로 보전하지 않으면 생산과 수입 유인이 약해지고, 정부가 모두 떠안으면 재정 부담이 커진다. 낮은 가격이 지속되면 에너지 절약 유인이 약해질 수 있고, 상한을 해제할 때 그동안 억눌린 가격이 한꺼번에 오를 위험도 있다. 가격관리의 핵심은 충격에 따른 부담을 누구에게, 얼마나, 언제까지 배분할 것인가에 있다.
각국의 선택은 이러한 부담 배분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은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을 설정했다. 전국 주유소의 판매가격을 동일하게 고정한 것이 아니라 정유사가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가격을 관리한 것이다. 중국은 기존의 국제유가 연동형 가격 관리제를 유지하면서 가격 인상 폭을 제한했다. 한국이 공급가격의 상한을 정했다면 중국은 예정된 가격 인상의 일부를 억제한 셈이다.
일본은 정유사와 수입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전국 평균 휘발유 소매가격을 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법적 판매가격 상한은 아니지만 소비자가격을 낮추려는 목적은 유사하다. 미국은 전략비축유 방출 등을 통한 공급 측 대응에 무게를 뒀다. 독일은 주유소의 가격 인상을 하루 한 차례로 제한하고 인하는 수시로 허용했다. 이어 유류세를 내려 소비자 부담 경감을 추진했다.
공통된 목적은 가계와 기업의 부담 급증을 완화하는 것이지만 작동 방식은 다르다. 가격상한은 허용되는 거래가격을 제한하고, 보조금은 공급자에게 재정을 투입해 소비자가격을 낮춘다. 감세는 세금 부담을 줄이며, 비축유 방출은 시장에 공급량을 늘리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개입 방식 자체보다 소비자가격에 얼마나 반영됐고 그 과정에서 어떤 비용이 발생했느냐다.
가격지표에서는 차이가 관측된다. 주요국의 3~9월 전년 동월 대비 에너지 가격 상승률을 단순 평균하면 한국 휘발유는 16.5%, 중국 수송용 에너지는 11.1%, 미국 휘발유는 28.8%, 독일 차량용 연료는 21.0% 상승했다. 가격 상승률만 비교하면 한국과 중국은 미국·독일보다 낮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한국의 최고가격제가 가격 전가를 완충했다는 해석과 부합하는 움직임이다.
이런 결과가 주는 시사점은 최고가격제를 무조건 연장하거나 일시에 폐지하는 양자택일을 피하라는 것이다. 우선 상한의 조정과 종료 기준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 환율, 국내 재고, 국내외 가격 격차를 반영해 충격을 분산하되, 여건이 안정되면 단계적으로 정상화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도입은 신속하게 하더라도 연장은 근거를 갖춰야 한다.
지원은 점차 취약계층과 피해 업종에 집중해야 한다. 저소득 가구와 필수 운송·농어업 등 연료 사용을 단기간에 줄이기 어려운 부문을 보호하되 소비가 많을수록 혜택이 커지는 구조는 경계해야 한다. 제조업도 별도로 살펴야 한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석유화학·철강 등의 업종은 원료 조달 여건, 가동률, 단위 생산비와 수출 물량을 기준으로 지원 필요성을 판단해야 한다.
궁극적인 해법은 공급 안정과 에너지 효율 개선이다. 정부 비축유와 상업 재고를 연계하고 수입처를 다변화하며 운송·보험 제약을 줄여야 한다. 가격상한으로 확보한 시간을 공급망 보강과 에너지 효율 개선 투자에 사용하지 않으면 다음 충격에서도 같은 임시처방을 반복하게 된다. 최고가격제는 위기의 비용을 없애는 마법이 아니라 그 비용이 경제를 한꺼번에 덮치지 않도록 시간을 버는 수단이다.
한국은 가격 충격을 완충한 성과를 인정하되 확보한 시간을 활용해 선별지원, 공급 다변화, 투명한 정산과 질서 있는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 좋은 가격정책은 오늘 가격표를 낮추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내일의 공급 안정과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계와 산업을 지키는 정책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