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국민소득 4만달러’ 최우선 과제는 지속성

입력 2026-1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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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특수에 일부 기업이 평균 올려
일본은 3만8000달러로 되레 후퇴
내수 활성화하려면 구조개혁 시급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이하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4만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은행도 올해 성장률 전망을 3.3%로 올리며 달성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밝혔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4만 달러를 넘긴 나라는 미국·독일·영국·프랑스 등 손에 꼽을 정도다. 1960년대 초에 국민소득이 100달러에도 못 미쳤던 나라가 중공업과 수출, 반도체·자동차 같은 첨단 제조업을 앞세워 1994년 1만 달러, 2005년 2만 달러, 2014년 3만 달러를 거쳐 60여 년 만에 이 문턱에 섰으니 값진 성취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축하 분위기는 찾기 어렵다. 이번 수치는 반도체 가격 급등과 AI 공급망 특수로 일부 기업의 이익이 평균을 끌어올린 결과이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명목 GNI는 21.8% 늘었지만, 그 몫이 가계에 고르게 돌아간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국민소득 4만 달러’는 달러 환산액이어서 환율에 따라 달라지는 명목 수치다. 평균의 화려함 뒤에서 내수 기업과 자영업은 여전히 힘겹다.

한 국가가 경제 발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는 국민소득 구간이 오를수록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장벽과 함정이 존재한다. 학계의 정설은 아니나, 단계별로 나눠 보면 시사점이 크다.

1만 달러 안팎은 ‘중간소득 함정’(Middle-Income Trap)이다. 저임금의 이점은 사라지는데 기술력은 따라가지 못해, 값싼 후발국과 기술 선진국 사이에 끼인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970년대 고성장 이후 외채위기와 포퓰리즘, 제도적 경직성을 넘지 못해 오랫동안 중진국에 머물렀다.

2만 달러대는 ‘생산성 함정’(Productivity Trap)이다. 추격 모델이 수명을 다하고 제조업 중심 구조가 굳으면서 서비스업 생산성 정체와 대·중소기업 격차가 커진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낮은 생산성과 구조개혁 지연이 겹쳐 글로벌 금융위기 후 혹독한 재정위기와 장기 침체를 겪었다.

3만 달러대는 ‘선진국형 저성장 함정’(Advanced Economy Trap)이다. 고도성장이 끝나고 고령화, 잠재성장률 하락, 자산 양극화가 한꺼번에 닥친다. 일본은 1990년대 초 이 구간에 들어선 뒤 버블 붕괴와 경직된 고용, 디지털 전환 지연으로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한국도 2014년 3만 달러에 진입한 뒤 12년을 이 구간에서 보냈다.

4만 달러 이상은 ‘글로벌 프런티어 함정’(Global Frontier Trap)이다. 따라갈 모델이 없으니 초격차 원천 기술과 글로벌 인재, 제도의 유연성이 생존 조건이 된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엔화 강세로 4만 달러 안팎까지 올랐지만 지금은 3만 8천 달러대에 머문다. 도달보다 유지가 어렵다는 뜻이다. 불평등까지 심해지면 사회 통합과 시스템의 지속가능성마저 흔들린다.

한국 경제가 4만 달러라는 거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훈풍을 느끼지 못하는 원인은 경제 내부에 누적된 구조적 어려움과 왜곡에 기인한다.

첫째, K자형 양극화다. 소수 반도체·AI 대기업이 소득 지표를 끌어올리는 사이 부품·장비 중소기업과 자영업, 전통 서비스업은 고물가와 내수 부진에 시달린다. 올해 2분기 국내 총투자율이 197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낮았다는 점은 기업의 성과가 투자와 임금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 준다. 수출 호황이 내수와 가계 소득으로 번지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초고령화와 성장 잠재력의 하락이다.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다. KDI는 잠재성장률이 현재 1%대 후반에서 2030년대 0%대로 떨어질 것으로 본다.

셋째, 제도의 경직성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규제 기득권이 신산업의 진입을 막고, 연금·복지 지출은 늘어난다. 추격형 성장은 한계에 이르렀지만 이를 대체할 혁신 생태계는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4만 달러 시대를 일시적 수치에 누리지 않고 지속가능한 선진 경제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산업 생태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반도체와 소수 대기업에 대한 쏠림을 줄이고 낙후된 지식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전 산업의 AI 전환(AX)을 중소·벤처와 지역 서비스업까지 확산해 성과가 협력사와 가계로 흐르는 상생 구조도 필요하다.

둘째, 노동·교육·규제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유연안정성으로 대·중소기업 간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청년 일자리를 넓혀야 한다. 고령화에 맞서 여성과 고령층, 해외 인재의 노동 참여도 넓혀야 한다. 신기술의 발목을 잡는 기득권 규제를 걷어내야 퍼스트 무버형 창의 생태계가 열린다. 2000년대 초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이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시장을 손질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되살린 것이 좋은 본보기다.

셋째, 포용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성장의 결실이 가계의 실질소득과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게 하고, 연금·재정 개혁을 선제적으로 매듭지어야 한다.

4만 달러는 도착점이 아니라 시험대다. 일본이 보여 준 길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평균이 아니라 다수의 삶이 나아지는 성장을 설계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국민도 4만 달러를 체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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