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농촌에서 농사를 짓다 보면 조금 다른 풍경도 보인다. 상추 몇 상자, 제철 과일 몇 봉지, 직접 만든 장류와 가공품을 들고 “어디에 내다 팔면 좋겠느냐”고 묻는 농민들이 있다. 잘 키우는 것만큼 잘 파는 일이 어려워진 것이다. 특히 소농에게 대형 유통시장은 높은 문턱이다. 일정한 규격과 물량을 지속적으로 맞춰야 하고 가격 결정에서도 생산자가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여러 작물을 조금씩 생산하는 고령농이나 가족농에게는 애초에 맞추기 어려운 구조다.
모든 농가가 수출할 필요는 없다. 모든 농가가 스마트팜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시장을 향해 달리는 농업이 있다면, 우리 동네의 밥상을 지키는 농업도 있어야 한다. 그 접점 가운데 하나가 로컬푸드다.
로컬푸드 직매장에 가면 조금 크거나 작은 오이도 있고, 모양이 제각각인 호박도 만난다. 생산자의 이름과 농장이 적혀 있는 농산물도 있다. 소비자는 누가 키웠는지 알고 사고, 농민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농산물을 내놓는다. 이것은 단순히 유통단계를 하나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다시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물건 하나를 사면서도 가격만 보지 않는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환경과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한다. 이른바 ‘가치 소비’다. 그렇다면 로컬푸드야말로 가장 일상적인 가치 소비가 될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구입하는 일이 지역 농민의 소득이 되고, 그 농민이 다음 해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한다. 농지가 유지되고 지역의 일자리와 먹거리도 함께 남는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지속되기 어렵다. 로컬푸드 직매장 하나 만들어 놓고 농민에게 알아서 출하하라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소농을 조직하고, 품목과 출하시기를 조정하고, 가공과 물류를 지원해야 한다. 직매장뿐 아니라 학교급식과 복지시설, 공공기관 급식, 지역 음식점까지 연결하는 지역 먹거리 순환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공공급식은 중요하다. 아이들의 학교 밥상과 어르신들의 복지급식에 지역 농산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면 농민에게는 예측 가능한 판로가 생긴다. 소비자에게는 생산자를 알 수 있는 먹거리가 돌아온다. 이것이 선의를 위해 농민을 돕는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작은 농가들이 사라지면 몇몇 농민의 소득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작물이 사라지고 농지가 방치되며, 지역의 먹거리 생산 능력도 함께 약해진다. 기후위기와 국제 공급망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K푸드가 세계인의 식탁으로 가는 길은 계속 넓혀야 한다. 동시에 우리 동네 농민이 동네 사람의 밥상을 지킬 수 있는 길도 넓혀야 한다. 세계로 가는 농업과 지역을 지키는 농업은 반대편에 있지 않다. 그래서 K푸드의 성공을 수출액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아쉽다. 멀리 세계인의 밥상에 오르는 K푸드도 자랑스럽지만, 오늘 우리 동네 농민이 키운 상추 한 봉지를 내가 사는 것 역시 한국 농업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농업의 미래는 한쪽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무엇을 사고, 누구의 농산물을 선택하느냐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