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유통업계를 넘어 은행에서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피해 규모와 비교해 기업이 부담하는 배상액이 적어 보안 투자를 확대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인정보 유출·침해 사건에 한해서라도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SK텔레콤(SKT) 유심정보 등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업종이 다 달라도 사고가 나면 기업이 크게 잃을 것이 없다는 점이 똑같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피해자가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천만 명에 이르지만 실제로 배상을 청구하는 사람은 그중 일부다. 그것도 몇 년 뒤에 1인당 10만원 안팎이다”라고 설명했다. 피해 규모와 비교해 소송 참여율이 낮고 배상액도 적어 기업이 보안 투자를 늘릴 유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 변호사에 따르면 SKT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피해자는 2300만 명이지만 소송 참여자는 약 20만 명이다. 전체 피해자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는 “20만 명에게 1인당 10만원 씩만 배상해도 합계 200억원인데, 이 돈이면 SK텔레콤의 1년 보안예산의 5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는 개인정보가 유출된 피해자가 직접 소송에 참여해야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소송에 드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예상 배상액이 크지 않아 상당수 피해자가 청구를 포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하 변호사는 해결책으로 집단소송제 도입을 제시했다. 집단소송제가 시행되면 별도로 불참 의사를 밝히지 않은 피해자 전체가 소송 결과를 적용받게 된다.
그는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면 기업이 보안을 더는 껌값 취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내가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피해자 전원이 소송에 참여하는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SKT 사건을 기준으로 피해자 2300만 명에게 1인당 10만원을 배상하면 전체 배상액은 2조원을 넘는다. 이 정도 규모의 배상 책임이 발생해야 기업이 보안예산을 확대할 유인도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집단소송제 도입이 지연되는 배경으로는 기업들의 반대를 꼽았다. 기업들은 집단소송제가 도입될 경우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 변호사는 “전체 모든 사건에 집단소송을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개인정보 유출, 개인정보 침해 사건에 대해서만이라도 도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피해자가 손해 발생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다만 개인정보 유출 사실만으로도 법원이 300만원 이하의 손해배상액을 인정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고 하 변호사는 설명했다.
그는 이메일 주소 정도가 아닌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면 불안감과 유심 교체, 비밀번호 변경 등에 필요한 수고를 고려해 손해를 증명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봤다.
기업은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확인하면 피해자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 관련 법에는 “지체 없이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기업이 사고를 늦게 파악하고 통지도 뒤늦게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등이 1인당 10만원 가량을 지급하도록 권고해도 기업이 배임 가능성을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도 내놨다. 일부 피해자에게 배상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같은 금액을 요구할 수 있어 기업으로서는 소송을 장기간 끄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 변호사는 “결국 소송으로 몇 년 뒤에 해결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신한은행에서는 약 2만5000명의 개인·신용정보가 유출됐다. 외부 비인가자가 대출모집인용 간편조회 서비스의 인증 절차를 우회해 접근하면서 고객 이름과 전화번호, 연소득, 대출 산출한도 등이 노출됐다. 일부 고객의 주민등록번호와 연계정보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KB국민은행에서는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시스템이 외부 침해를 받아 고객 119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암호화된 주민등록번호 등이 유출됐다. 하나은행에서도 영업지원시스템에 비정상적인 외부 접근이 발생해 고객 89명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직장명 등 개인정보가 새어 나갔다.
신한·KB국민·하나은행은 유출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고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금융당국도 현장 조사와 은행권 보안 점검에 착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