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인기 ‘세계의 언어’로 불릴 정도
월 수출 천억달러 돌파 자부심 키워

“왜 졌냐.”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월드컵 청문회에서 어느 의원이 한 질문이다. 답변할 가치조차 없는 어리석은 수준이다. 굳이 답변한다면 “상대방이 골을 넣었고 우리는 못 넣었기 때문”정도면 어떨까.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지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이미 월드컵 11회 연속 출전의 금자탑을 쌓았다. 우승 경험이 없는 국가로는 유일하다.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한국의 젊은이들과 기업은 마음껏 재능을 발휘했고 세계는 환호했다. 그 시간에 경제도 커졌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올 6월,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70.9% 늘어난 1022억달러를 기록했다. 하루 평균 수출이 45억달러였다. 무역수지는 361억달러 흑자로 사상 처음으로 월 300억달러를 넘어섰다. 세계무역기구(WTO) 기준 1~4월 누적 수출에서 한국은 중국, 미국, 독일,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5위를 기록했다. 중계무역 비중이 큰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4강에 들어갔다. 2002년 월드컵에서 실현했던 세계 4강의 신화가 수출에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축구에서의 아쉬움을 수출이 달래주고 있다.
다만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가계 소득이나 국내투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그렇다고 칭찬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이를 악물고 달린 축구 대표팀을 격려해 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월드컵에서 마음껏 뛰어다닌 기업이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기장 펜스광고는 한 달이 넘는 월드컵 기간 동안 세계인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밤새워 경기를 시청한 국민들은 큰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거기다 빅경기였던 8강전 잉글랜드와 노르웨이의 경기를 앞두고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등장해 심판에게 경기구를 전달하고 골 세리모니까지 흉내냈다. 막연했던 “Next Starts Now(미래는 지금 여기서부터)”의 구호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이 또한 현대자동차의 자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제품이었다.
월드컵 기간 중 우리는 뜻밖에 한국의 한 중소기업을 만났다. 회사 이름은 ‘두지’, 머리끈을 생산하고 있다. 실이나 끈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 끄네끼에서 따온 머리끈 브랜드 ‘끄네끼(KKNEKKI)’가 이 회사 제품인데 노르웨이의 공격수 엘링 홀란이 매경기 착용해 화제가 됐다. 두지는 2015년 노르웨이 기업 본뎁(Bondep)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유럽시장에 진출했다.
끄네끼에 매료된 홀란은 본뎁에 직접 투자해 주주가 되기도 했고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는 홀란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출시해 완판도 했다. 지방의 한 중소기업이 이뤄 낸 세계화의 현장을 보면서 두지의 조현태 사장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한국의 왕성한 기업가정신을 깨닫게 해 준 것이 이번 월드컵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K팝은 세계인의 언어로 불려도 될 만큼 사랑을 받았다. 가장 빠른 시간에 치러진 멕시코 개막식에서는 ‘K팝 데몬 헌터스’의 가수 이재가 출연했다. 그녀는 이번 월드컵의 주제가 ‘DNA’의 일부를 한국어로 열창했다. “또 넘어져도 난, 또 다시 일어나. This is more than just a game. It’s our DNA.(이건 그냥 게임이 아냐, 우리의 DNA야)” 한국어 가사는 이재가 직접 썼다고 한다. 귀를 의심했다. 월드컵의 공식 주제가에 한국어가 등장한 것은 비현실적인 즐거움이었다. 또 미국 개막식에는 블랙핑크의 리사가 등장해 갈채를 받았다.
K팝은 마침내 결승전까지 갔다.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결승전 하프타임 쇼에서는 BTS가 ‘다이너마이트’를 7인 완전체로 열창했다. BTS의 공연당일 스포티파이(Sportify) 스트리밍 회수는 3000만 회를 넘었다. 결승전을 앞두고는 ‘오징어 게임’에 출연했던 배우 정호연이 트로피 트렁크 오프너로 등장했다. 그녀는 월드컵 트로피 트렁크를 제작한 루이뷔통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활약하고 있었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미 세계를 휘젓고 있었다.
감동도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메시와 스페인 야말의 19년 만의 재회는 기업 사회공헌(CSR)의 위대함을 또 한 번 일깨워 줬다. 인구 52만 명의 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의 분전은 영원한 언더독은 없다며 축구공은 둥글다는 진리를 깨닫게 했다.
우리는 월드컵을 충분히 즐겼다. 32강 진출은 하지 못했지만 11회 연속 출전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를 쌓았다. 한국 문화의 보편성과 포용성을 세계에 과시하기도 했다. 한국보다 더 뛰어난 투지와 기량을 보며 감탄하고 또 배웠다. 더 이상 “왜 졌냐”고 묻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