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쏟아지는 유창한 정답은 사고의 마찰을 거의 없애고, 그만큼 즉각적인 편의를 제공한다. 그러나 사고력이 한창 자라야 할 시기의 아이들에게, 이 도구는 어떤 방향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발달심리학의 시각에서 AI의 작용은 연령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사고와 추론의 신경회로가 성숙한 성인에게 AI는 이미 갖춘 능력을 보조 도구에 맡기는 ‘위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사고 능력 자체가 아직 형성 중인 아동·청소년에게는 사고 과정 그 자체를 기계로 채워버리는 ‘대체’에 가깝다. 발달기에 거쳐야 할 인지적 고통과 시행착오의 시간이 생략되면, 아이의 뇌는 독립적 사유의 기준선 자체를 세우지 못한다. 일부 연구자는 이를 ‘인지 위축 패러독스’라 부른다.
이러한 위험은 실증 연구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의 함사 바스타니(Hamsa Bastani) 등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학 학습 실험은 그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드레일 없는 일반 AI 챗봇(GPT Base)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은 연습 문제 성적이 대조군보다 48% 상승했다. 그러나 도구 없이 종이와 연필로 치른 최종 시험에서는 오히려 대조군보다 17%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아이들은 AI의 오류까지 그대로 베꼈고, 자신이 개념을 이해했다고 착각했다. 학습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학습했다고 느끼는 ‘학습의 환상’이다.
같은 도구가 정반대 결과를 낸다는 점은, 위험만큼이나 가능성도 보여준다. 정답을 즉시 떠먹여 주는 대신, 학생이 스스로 사고하도록 의도된 어려움과 힌트를 제공하는 ‘비계 설정형 인지 마찰(Scaffolded Cognitive Friction)’ 접근이 그 한 갈래다. 같은 와튼 실험에서, 힌트 중심으로 설계된 학습 보조형 AI를 사용한 학생들은 최종 시험 점수가 떨어지지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된 사례도 적지 않다. 같은 와튼스쿨의 이선 몰릭(Ethan Mollick)·릴라 몰릭(Lilach Mollick) 연구진은 AI를 정답 자판기가 아닌 가상 토론 상대·시뮬레이션 교사·학습 코치 등으로 활용하는 일곱 가지 교실 접근을 제안해 왔다. 핵심은 학생이 AI의 출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자기 사고를 정교하게 다듬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학습은 정답에 도달하는 속도가 아니라 도달하기까지의 사유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인지심리학의 오래된 원칙은, AI를 그 사유의 도구로 활용했을 때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도구의 설계만큼이나 결정적인 변수가 또 있다. 학생이 AI 앞에 앉을 때 어떤 자세로 다가가는지다.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가’와 ‘무엇을 더 알고 싶은가’라는 두 자세는 같은 도구를 전혀 다른 학습 환경으로 바꿔놓는다. 학업의 목표를 자기 언어로 정의하고, 그 목표를 따라 질문을 설계하며, AI의 답을 다시 자기 사고로 통과시키는 그 과정 자체가 가장 깊은 차원의 인지적 훈련이다. 정답을 향한 도구가 아니라 탐구의 동반자로 AI를 마주할 때, 그 성장 가능성은 거의 무한히 열린다.
제도적 방어 역시 필수적이다. 한국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2026학년도 수행평가의 다섯 가지 관리 원칙을 마련했다. 교사의 실시간 대면 관찰, AI 활용 과정의 명시, 그리고 AI가 제시한 여러 아이디어 중 학생이 무엇을 채택하고 무엇을 버렸는지 그 이유까지 기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기계의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베끼는 행위는 부정행위로 규정된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사고의 최종 주체가 학생이라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확인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같은 도구를 정답 자판기로 두면 아이는 사유의 근육을 키울 기회를 잃지만, 탐구의 동반자로 마주하게 도와주면 그 도구는 사고를 한 걸음 더 멀리 밀어주는 비계가 된다. 결국 사용의 방향이 결과를 결정하며, 그 방향을 함께 잡아주는 일이 어른의 역할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고력의 본질은 정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판단력에 가깝다. 기술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지더라도, 아이들이 자기 질문을 빚고 답을 의심하고 다시 묻는 느린 사유의 시간을 지켜주는 일은, 교육 공동체와 어른들이 짊어져야 할 가장 무겁고 당연한 책무다.
한유진 | CASA 융합심리연구소 소장 | 한국아동미술치료학회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