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 톡!] 교섭요구 공문, 방치해선 안된다

입력 2026-08-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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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요구 공문 한 장이 회사를 바쁘게 만드는 시대가 됐다. 3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이 사용자로 지목되며 단체교섭을 요구받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서다. 예전 같으면 “우리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말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개정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면 사용자로 본다. 문제는 이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기준이 업종과 사업장 구조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다만 최근 노동위원회 판정례를 보면 나름의 경향성은 드러난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6월 타워크레인 노조 사건에서 산업안전 의제에 대해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지만, 임금 의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서울지방노동위(삼성물산)와 경북지방노동위(포스코이앤씨)도 산업안전 의제에서는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별도로 기각해, 같은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기업 실무를 보면 대응 양상이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교섭요구 공문을 받으면 스스로 사용자성을 판단해 공고하기보다, 일단 공고를 보류하고 노동위원회의 판단부터 받아보려는 기업이 많아졌다. 법 시행 100일을 전후한 조사에서 실제 교섭이 시작된 곳은 8곳에 불과했다는 언론 보도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이 전략이 언제까지나 유리한 것은 아니다. 원청이 공고를 보류하면 노조는 ‘미공고 시정신청’으로 대응하는데, 이 시정신청 사건에서 노동위원회는 87% 이상 폭넓게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시간을 버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판단 결과 자체를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무대응’이 아니라 ‘전략적 대기’다. 첫째, 공고를 보류하는 동안에도 의제별로 우리 회사가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는지 미리 점검해야 한다. 하청 근로자의 채용·배치·업무지시·근태를 누가 결정하는지, 특히 산업안전·작업환경처럼 법령상 관리·감독 의무가 이미 원청에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사실관계를 정리해 두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 노조가 미공고 시정신청을 제기할 경우에 대비해 소명자료를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셋째, 의제별 전략적 방향성을 설정하여야 한다. 산업안전처럼 인정 가능성이 큰 의제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보다는 임금·인사처럼 다툼의 여지가 큰 의제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판단과 자료 준비는 공문을 받은 시점이 아니라 그 이전, 즉 평상시 원·하청 계약 구조를 점검하는 단계에서 이뤄져야 실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조문 몇 줄이 바뀐 게 아니라, 원·하청 노사관계의 틀 자체를 바꾸는 변화다.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기다리는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준비할지가 앞으로의 교섭 국면을 좌우할 것이다.

박준 노무법인 라움 대표·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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