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흥망성쇠 설명에도 들어맞아
시대흐름 대처 올바른지 고민해야

14~15세기부터 서유럽에서 봉건주의와 그 경제적인 바탕이 된 장원제도가 쇠퇴하면서 상업과 원거리 무역을 중심으로 자본이 축적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등장한 곳은 북부 이탈리아였다. 그 뒤를 이어 남부 독일, 플랑드르/브라반트와 암스테르담 등 저지대 국가(Low Countries), 그리고 끝내는 영국으로 이어지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중세와 근대 초기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네치아, 피사, 제노바 등은 오랫동안 지중해의 재화가 유럽 대륙으로 유입되는 창구였으며 피렌체는 유럽 금융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설 즈음 지중해의 무역은 오스만제국에 의해 견제를 받기 시작하였으며 피렌체의 금융은 정치적인 대출이 실패하면서 쇠퇴하였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할 즈음 유럽 경제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북부 이탈리아와 알프스산맥을 두고 이웃하고 있는 남부 독일은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북부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시들어갈 즈음 등장한 것은 그 지역의 푸거 가문이다. 푸거 가문 자본주의의 절정을 이룬 인물은 야콥 푸거(Jakob Fugger, 1459~1525)이다. 야콥은 헝가리의 구리와 은광을 재건하고 개발하면서 광구(mines)와 용융(熔融) 시설, 롤러 밀(rolling mill)에 대규모 실물 투자를 하였다. 그리고 광석과 제품의 운반을 위해 도로와 운송 시설을 건설하였다.
이는 고정 자본(fixed capital)에 대한 투자로 그때까지 상업자본주의(merchant capitalism)에서 이루어지던 순환 자본(circulating capital)의 투자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는 산업혁명 시대에나 가능했던 산업 자본가의 역할을 역사상 처음으로 수행하였다. 이 밖에도 금융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투자를 통해 그는 1525년 사망할 때쯤 유럽 전체 생산량의 2%에 근접할 정도의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러나 푸거 가문 역시 정치적인 대출의 실패, 종교 갈등 등을 거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야콥 푸거가 헝가리에서 생산한 구리와 은은 주로 대서양 연안 도시 안트베르펜(벨기에 서부에 위치한 도시. 영어명 안트워프)에서 거래되었다. 그러나 안트베르펜을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의 탄압이 이어지면서 16세기 후반 자본, 금융 기법, 기술을 지닌 채 상인과 장인들이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였다. 17세기 암스테르담의 발전은 눈부셨다. 조선과 해운, 상품시장, 금융 등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섰다. 특히 은행, 금융상품, 투기 등 금융 기법은 현대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심해진 경쟁과 프랑스를 비롯한 강대국과의 갈등으로 암스테르담 또한 쇠하였다.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던 영국은 네덜란드와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네덜란드와의 전쟁과 화해를 통해 영국의 군사력(해군)과 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1689년 명예혁명의 결과 네덜란드 출신의 윌리엄 3세가 그의 아내이자 제임스 2세의 딸인 메리와 영국을 공동 통치하면서 암스테르담의 많은 제도와 기술이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에는 산업혁명을 일구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으로 거듭났다.
중세 이후 산업혁명까지 유럽의 경제적인 선도 국가가 변천하는 이와 같은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무엇일까? 많은 학설이 가능하나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아닐까. 창조적 파괴는 기존의 기술(아이디어)을 새로운 기술(아이디어)이 대체하면서 일어나는 경제발전을 일컫는다.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의 역사적 전개도 그와 같은 원리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은 경제발전에서 아이디어와 창조적 파괴의 역할을 구명한 세 학자인 미국의 조엘 모키어(Joel Mokyr), 캐나다의 피터 하윗(Peter Howitt) 그리고 프랑스의 필리프 아기옹(Philippe M. Aghion)에게 주어졌다. 창조적 파괴는 산업뿐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이론이다. 지금 세계와 대한민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서 창조적 파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지 곰곰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