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근로자추정제’ 증명 책임자가 바뀐다

입력 2026-04-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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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공인노무사

‘노무 제공하면 근로자’로 개정추진
사용자가 ‘근로자 아님’을 입증해야
노란봉투법 결합 땐 폭발력 더 커져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한다(제2조제1항제1호). 법문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근로계약을 체결”해야만 근로자가 된다는 말은 없다.

즉, 누군가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그 계약의 실질(“종속적인 관계”)이 근로계약과 같다면 근로자로 판단될 수 있다(대법원 2004다29736). 이때 그 실질은 지휘·감독 여부, 근무시간과 장소의 구속, 보수의 임금성, 전속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그렇다면 그 실질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예를 들어보자. 회사가 프리랜서에게 일을 맡겼다. 그런데 돌연, 그 프리랜서가 자신을 근로자라고 주장하며 퇴직금을 요구한다. 이 경우 지금까지는 그 주장을 하는 사람, 다시 말하자면 프리랜서가 그 실질을 증명해야 했다(대법원 2006다54637).

그런데 이 원칙이 뒤집힌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5572)이 그것이다. 개정안 제104조의2 제1항은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이 법과 관련한 분쟁해결에서 근로자로 추정한다”고 정한다. 정부와 여당은 2026년 노동절까지 입법을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이 추정이 적용되면 노무 제공자, 다시 말하여 프리랜서나 위촉계약자 등은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직접 노무를 제공하였다’는 사실만 소명하면 된다. 사용자가 이를 뒤집지 못하면 근로자성이 그대로 인정된다.

문제는 뒤집기, 그러니까 번복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추정의 번복에는 반증이 아니라 본증이 필요하다(대법원 98다8974). 반증이 “정말 그런가?”라면 본증은 “아니구나”다.

따라서 근로자추정제 시행 시 사용자는 판단하는 사람에 대해 근로계약의 실질, 즉 “종속적인 관계”가 없었음을 “근로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사실은 기록되기 어렵다. 예컨대, 메신저로 지시를 했다는 사실은 대화 기록 한 건이면 족하다. 하지만 지시를 안했다는 사실은 대화 기록 전체에 걸쳐 한 건이라도 드러나면 안된다. 요컨대, 없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 참으로 어렵다.

증명이 이토록 어렵다면 답이 없는가. 있다. 복멸이다. 복멸이란 추정된 사실을 반대 증거로 뒤집는 것, 한마디로 “이걸 증명하면 추정이 깨진다”는 말이다. 해외 입법례 중 미국 캘리포니아주 AB5(Assembly Bill 5, 2019)는 사용자가 추정을 복멸하려면 충족해야 하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각각 자율성(Autonomy), 사업 이질성(Business Distinction), 독립된 직업(Customarily Engaged)으로 그 앞 글자를 따서 ABC 테스트라고 한다. 사용자가 이 테스트를 통과할 경우 추정을 깰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사용자가 무엇을 증명하면 추정이 깨지는지에 관한 기준 자체가 없다.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퇴직금, 연장·휴일근로수당 등이 소급 적용된다. 집단소송으로 번져 패소 시 수천억 원의 채무가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승패와 별개로, 1심부터 대법원,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재판소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송비용과 인력 부담도 현실적인 문제다. 보험업계의 위촉계약 설계사, 방송업계의 프리랜서 진행자, 플랫폼의 배달·운송 기사처럼 노무제공자 비중이 높은 산업이 긴장하는 이유다.

여기에 2026년 3월 10일 시행된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부담을 더한다. 아니, 곱한다는 말이 맞겠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여, 하청 노동조합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는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제2조제2호). 그런데 근로자추정제가 민사소송에서 근로자성 인정의 문턱을 낮추면, 그 판단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다투는 사건에서도 유력한 논거로 작용할 수 있다. 두 제도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하는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입법 추진을 밝히는 자리에서 “우리 입법과 유사한 수준의 선례는 찾기 힘들다”고 인정한 바 있다. 선례가 없다는 것은, 결과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으레 그렇듯, 제도의 취지는 선하다. 가짜 3.3 계약으로 근로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답인지 의문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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