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에서는 수천 개 기업이 최신 기술을 들고 무대에 오르고, 경쟁사와 투자자, 언론이 그 모습을 지켜본다. 이번 주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반도체 산업 전시회인 세미콘 코리아(SEMICON Korea) 역시 마찬가지다. 전 세계 어딘가에서는 거의 매일 크고 작은 박람회와 콘퍼런스가 열린다. 기술은 숨길수록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왜 기업들은 이토록 적극적으로 자신의 기술을 공개하는 것일까?
콘퍼런스와 특허는 모두 기술을 세상에 알린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진다. 이러한 공개를 가능케 하는 배경에는 특허 제도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국가는 발명가에게 기술 공개를 요구하는 대신, 일정 기간 해당 기술을 독점적으로 활용할 권리를 부여한다. 즉, 전시회가 현장에서 기술의 완성도와 개발 방향을 보여주는 자리라면, 특허는 기술이라는 무형자산을 법적으로 권리화 하는 과정이다. 기술이 전면적으로 비밀에만 머물렀다면 산업은 지금처럼 빠르게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공개된 기술은 다음 혁신의 출발점이 되고, 산업은 그 지식의 축적 위에서 진화해 왔다.
기술 공개는 경쟁을 촉발하지만, 그보다 먼저 관계를 형성한다. 공개된 정보는 기술 제휴와 공동 개발을 촉발하고,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되며, 신제품을 시장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IT 기업들이 콘퍼런스와 특허를 통해 자사 기술을 업계의 기준, 나아가 표준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다. 그래서 공개 범위는 전략적으로 설정된다. 기업들은 전시회나 특허를 통해 기술의 핵심 원리는 분명히 드러내되,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세부 공정과 노하우는 영업비밀로 남겨둔다.
따라서 기술을 세상에 선보이기 전, 그 권리를 특허로 미리 선점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기술을 먼저 공개하되, 그 대가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다. 결국 기술의 진정한 힘은 얼마나 깊이 숨겼는가에 있지 않다. 기술을 공개하고도 후발 업체들에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을 때, 기술은 비로소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기업의 지속 가능한 자산이 된다. 더불어서 진짜 경쟁력은 ‘보여주는 기술’이 아니라, 그 이면의 끝내 드러나지 않는 기술에 있다.
고은주 삼성벤처투자 투자심사역·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