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경험 확장 아닌 대체에 불과해
부딪쳐 얻는 가치의 소중함 깨닫길

지난해 출판된 크리스틴 로젠의 역작 ‘경험의 멸종’은, 연말 각종 매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목록에 단골로 이름을 올렸다. 로젠은 기술이 경험을 대체함에 따라, 인간의 소중한 경험이 빠른 속도로 멸종되어가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과연 계속해서 인간일 수 있을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가을 대학가에선 시험기간 중 다수 학생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답안을 작성하는 대규모 커닝이 이루어졌다는 보도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실은 코로나19 위기 때도 수도권 모대학 의대생의 집단 커닝 사실이 기사화된 적이 있다. 당시 커닝을 주도했던 학생들의 속내엔 이제 단순 암기실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으니, 획기적인 정보기술 혁명에 부응하는 교수법의 도입과 그에 걸맞은 새로운 평가 방식을 적용해달라는 항변이 담겨 있었다.
한데 학생들 항변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었다. 로젠의 경고에 귀기울여보니, 자동차나 기차, 망원경이나 현미경 같은 과거의 기술은 인간의 경험을 확장(extend)하는 것이었던 반면, SNS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나 AI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기술은 인간의 경험을 대체(replace)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팔 다리 머리 등의 육체를 사용하지 않고도 경험이 가능하다는 착각에 빠지고 있음은 물론이요, 검색이든 유튜브든 생성형 AI든 일단 첨단기술을 활용해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나면, 그 정보에 무조건 신뢰를 보내면서 “이젠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착각 또한 불사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내가 종종 떠올리는 경험이 있다. 은퇴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나무는 재고가 없다. 한 해 지나면 나무 가치가 더 올라가니 재(財)테크엔 목(木)테크가 최고”라는 원예상의 꼬임(?)에 넘어가 소나무 정원수를 심었다. 단 “소나무는 해마다 가지치기를 해주어야지 두 해만 건너뛰어도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다”고 했던 조경업자 충고를 새겼어야만 했다.
전문 조경업자는 몸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아마추어들에겐 동영상을 보고 배워서 전지를 하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소나무 전지’를 검색하면 가지치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시연해주는 영상이 주루룩 올라온다. 조회수 많은 동영상을 중심으로 이것저것 클릭해서 보면 어느새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붙는다. 하지만 막상 전지가위를 손에 들고 소나무밭에 들어가면 동영상에서 보던 소나무는 온데간데없고, 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은 금세 움츠러들고 만다. 팔다리 움직이고 머리 써가며 몸으로 익혀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초보 수준의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한때 ‘적자생존’ 곧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가 바로 각급 학교 교실에서 칠판이 사라지고 파워포인트(PPT) 화면으로 대체되어가는 시기였을 것이다. 당시 학생들이 손은 내려놓고 눈으로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걱정이 앞섰던 기억이 난다.
경험에 담긴 남다른 의미를 뜻밖의 곳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시기, 자신의 목숨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해외로 도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의식주를 제공했던 유럽인들이 있었는데, 그런 위험을 무릅쓴 이들에게 공통점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들은 유대인 의사 덕분에 목숨을 구했던 경험, 자녀의 절친이 유대인이었던 경험, 유대인과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이었던 경험 등, 어떤 형태로든 유대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경험의 소유자들로 밝혀졌다고 한다. 직접 부딪친 경험 덕분에 유대인을 향한 악의적 편견이나 부정적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않았던 셈이다. 멸종 위기의 경험을 보란 듯이 구출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