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제언] 집은 남았지만 사람은 떠났다

입력 2025-12-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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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쉼표힐링팜 대표

빈집으로 드러난 농촌 정주여건의 민낯

농촌에는 집이 많다. 그러나 사람이 살 집은 많지 않다. 빈집은 늘어나고, 주거환경의 질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농촌 정주여건의 문제는 단순한 주택 부족이 아니라 ‘살 수 없는 집’이 늘어나는 구조에 있다.

농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대문은 닫혀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자란 채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다. 통계상으로는 빈집이 많아 보이지만, 막상 농촌에 정착하려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집은 많지 않다. 빈집은 존재하지만, 거주 가능한 주택은 부족한 역설이 농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오래된 집이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노후·불량주택, 상하수도와 같은 기초 생활 인프라 미비, 단열과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구조 등으로 빈집은 ‘활용 자산’이 아니라 ‘방치된 공간’으로 남아 있다. 수리를 전제로 접근하려 해도 비용 부담은 개인에게 돌아가고, 결국 빈집은 다시 시간 속으로 밀려난다.

여기에 농촌 주거환경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도 존재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장, 축사, 태양광 시설 등이 주거지 인근에 무질서하게 들어서며 악취와 소음, 경관 훼손 문제가 반복된다. 주거지와 산업 시설의 경계가 무너진 공간에서는 갈등이 일상화되고, 정주 의지는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집의 노후화보다 더 큰 문제는 집 주변의 환경이 더 이상 삶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부 역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농촌공간계획 수립, 농촌마을보호지구 지정, 빈집 정비와 주택개량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이 추진된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 속도는 지역마다 다르다. 행정 절차는 복잡하고, 소유권 문제가 얽힌 빈집은 정비가 더디다. 지원 사업은 존재하지만, 실제로 집을 고쳐 살기까지는 시간과 비용, 행정 부담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농촌의 빈집 문제는 단순한 주택 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농촌을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의 태도다. 숫자로 집계를 마치는 정책과, 사람이 머무를 수 있도록 공간을 다시 설계하는 정책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주거는 정주여건의 출발점이다. 집이 불안정하면 의료·교육·일자리 정책도 작동하기 어렵다. 청년이 농촌으로 오지 않는 이유 중 상당수는 일자리 이전에 ‘살 집이 없어서’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다. 농촌 주거정책은 이제 두 갈래 질문을 동시에 던져야 한다. 빈집을 얼마나 정비했는가가 아니라, 그 집에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난개발을 막고, 주거지와 산업 시설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생활 인프라를 함께 설계하지 않는다면 빈집 정비는 숫자만 남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집을 고치는 일과 마을을 다시 설계하는 일은 분리될 수 없다.

집은 건물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다. 농촌에 집은 남았지만 사람이 떠났다면, 그것은 주거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과 공간 설계의 실패다. 이제 농촌의 빈집을 ‘정비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정주의 출발점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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