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 넘어 특화자원 활용 과제
장르별 강점 살려 집중지원 전환을

지역 문화산업정책은 지역별 동일한 인프라를 균형있게 조성하는 균형 발전에 머무르면 안 된다. 수도권 중심의 문화산업 집중도가 지난 20여 년간 변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지역의 특화 자원을 활용한 차별화 전략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역 문화산업이 지속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전국이 유사한 장르와 산업구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강점을 살려 차별적 문화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그동안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 해소를 위해 콘텐츠코리아랩, 콘텐츠기업지원센터, 글로벌게임센터, 음악창작소 등 문화산업 인프라를 거의 모든 광역자치단체에 조성하였다. 이러한 인프라 확대에 따라 지역 문화산업 예산은 2000년 이후 연평균 10% 이상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지역 문화산업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2006년 서울의 문화산업 매출 비중은 66%인데, 2022년에도 63%로 여전히 절대적 우위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경기도의 매출 비중은 17%에서 24%로 높아졌다. 반면, 서울·경기 외 지역의 매출 비중은 17%에서 13%로 하락했다.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2020년 기준 한국 인구의 44%가 서울·경기에 거주하지만 문화산업 매출 비중은 무려 88%에 달한다. 사업체 수는 54%, 종사자 수는 75%가 서울·경기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경기를 제외한 지역은 인구는 56%이지만 문화산업 매출은 12%, 종사자 수는 25%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업체 수는 46%이다. 이는 지역 문화산업의 영세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프라 확충 중심의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은 투자 규모 대비 실질적 산업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문화산업 인프라의 전국적 균등 조성보다는 지역별 특화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 인프라의 대부분은 영상산업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영상산업 범주 안에서도 특수효과, 후반작업, 가상현실, 온라인게임, 콘솔게임, 웹툰 기반 영상 등 가치사슬 및 장르 세분화를 통해 차별화를 추진할 수 있다.
부산과 부천은 각각 영화와 만화를 장기간 특화 산업으로 집중 육성해 왔고, 글로벌 인지도를 구축한 단계이다. 그러나 부산의 경우 2022년 영화 분야 사업체 수의 전국적 점유율은 2010년보다 하락했다. 서울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만화는 서울 점유율이 줄고, 여러 시도의 점유율이 함께 증가하였다. 정부는 지역의 장르별 강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 거점기관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향후 지역 거점기관은 지역 대표 핵심 콘텐츠 지식재산(IP) 발굴, 지역 대학과 산학 협력 기반 구축, 특화기업 클러스터 조성 등 보다 전략적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결국, 지역 문화산업정책의 목표는 전국 문화산업 규모를 획일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차별성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문화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는 지역의 문화, 기술, 인력 등 차별적 자원을 활용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이를 중심으로 클러스터와 가치사슬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지역별로 특화된 기업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업, 대학, 지자체를 연결하는 혁신 네트워크 구축도 필수적이다.
창의성과 정체성이 생명인 문화산업은 똑같은 산업 구조를 전국에 복제하는 방식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이제 지역 문화산업정책은 ‘균형’이라는 명분을 넘어, ‘다름’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