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통합기술 과감한 이전 시급해
선택과 집중 통해 시장부터 키워야

11월 27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는 네 번째 발사에 성공했다. 명목상으로 민간주도로의 전환을 위한 민관협력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국내 발사체 개발 전반은 여전히 국가 주도의 대형사업으로 진행되고 민간 역할은 구성품 하청 생산과 체계 조립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 상업 우주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 발사의 경제성을 입증했고 스타링크는 1만여 기의 위성을 띄운 초대형 통신망으로 성장했다. 2024년 우주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12조6000억 원에 달했다. 정부는 최대 고객이자 규제자로서 방향을 제시하고 위험 부담이 큰 초기 임무를 구매하며 민간 혁신을 끌어낸다. 민간 주도 및 정부 촉진 모델을 통해 기술과 시장을 동시에 선점해 온 셈이다.
중국은 국가 전략과 벤처 자본이 결합된 정책 주도형 뉴스페이스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2014년 폐쇄적이던 정부 주도 우주산업을 민간 자본에 개방하며 상업 우주기업 설립 붐을 일으켰다. 중국은 재사용 로켓, 대형 위성군, 달·화성 탐사까지 일관된 국가 전략 아래 민간기업을 정책 도구이자 혁신 엔진으로 활용한다. 상업우주가 곧 국가 전략산업이라는 인식이 분명하다.
미·중 우주경쟁 속에서 한국 상업 우주산업은 어디에 서 있을까. 누리호 성공과 우주항공청(KASA) 출범으로 우주강국 도약의 구호는 외쳤지만 상업우주 관점에서 보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올드 스페이스의 국책 프로젝트는 있으나 민간이 설계 및 개발을 통해 반복적으로 수익을 내는 지속 가능한 시장은 없다.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려면 정책의 방향성 자체를 상업우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이 단순한 우주발사체 기술 보유국을 넘어 상업우주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개별 기술 과제보다 시장과 수요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정부가 대형 위성군, 군사·통신·지구관측 인프라를 장기 계약으로 발주하고 이를 민간이 수행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한국도 국가 위성군 로드맵을 제시하고 설계·제작·발사·운영을 민간에 전격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책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설계 및 통합 기술을 민간에 이전해야 한다. 수요가 있어야 투자가 따르고 투자가 있어야 기술과 인력이 축적된다.
둘째, KASA는 연구기관이 아니라 산업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KASA는 민·군을 묶는 협력 구조와 조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초기 상용서비스를 정부가 첫 고객으로 구매해 주는 제도도 필요하다. 실패를 전제로 한 소규모 실험이 축적되어야 스타트업 생태계가 육성된다.
셋째, ‘발사체·로켓 개발 우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발사체는 중요하지만 이미 글로벌 시장에는 다양한 상업발사 서비스가 있다. 한국 기업이 모든 것을 자체 발사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핵심 탑재체, 위성 플랫폼, 지상국·데이터 처리, 우주기반 서비스(농업·물류·재난 관리 등)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한국도 조속히 뉴스페이스 산업의 글로벌 공급체인망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국제협력은 시장 창출 관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미·중 경쟁이 격화될수록 중소 국가와 신흥국은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다. 한국은 기술 및 동맹 네트워크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중동, 동남아 국가와의 우주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이 해외 위성 제작·운영, 데이터 서비스 사업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과감한 우주인력 정책도 필요하다. 산·학·연·군을 넘나드는 유연한 인력 이동이 요구된다. 우주 분야의 인재가 연구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고려해야 한다. 우주 스타트업이 젊은 공학도와 기업가에게 매력적인 커리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인재가 모이지 않는 우주 전략은 종이에 그린 탁상공론에 불과하다.우주산업은 이제 국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전쟁터다. 우주는 더 이상 과학자의 꿈이 아니라 산업 정책의 최전선이라는 의미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순한 추종이 아니라, 분명한 강점과 역할을 가진 ‘틈새 강국’ 전략이다. 상업 우주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면 이제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어떤 우주 시장을 만들고 어떤 민간 생태계를 키울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