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카이로 박물관’이 세계에 던진 메시지

입력 2025-12-01 06: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11월 개관한 이집트서부 관광거점
유적·유물 서사적 주도권 되찾아
한국도 문화재 회수 장기적 대비를

카이로 서쪽 사막 가장자리에 새로운 태양이 떴다. 2025년 11월 1일,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이다. 1992년 처음 구상된 뒤 33년, 착공한 지 20년 만에 완성된 이 거대한 건축물은 총 1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 대규모의 단일 문명 박물관이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가 약 8억 달러를 차입 형태로 지원했고, 나머지는 이집트 정부가 부담했다. 10만 점이 넘는 유물을 한 지붕 아래 품는 규모도 압도적이지만, 진짜 의미는 그 너머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83t짜리 람세스 2세의 화강암 거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 뒤로 펼쳐진 거대한 유리창으로 기자 피라미드가 정면으로 보인다. 그 아래,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투탕카멘의 5398점 유물이 빛난다. 이집트는 이 공간을 통해 말없이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나온 유물로 우리 이야기를 한다고.

같은 시각, 유럽의 옛 제국 박물관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곤혹을 치렀다. 2023년 대영박물관은 2000점에 달하는 고대 보석과 금장식을 20년간 직원이 훔쳐 이베이에 팔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2년이 지난 지금도 1500점 이상은 행방이 묘연하다. 2025년 10월 19일에는 루브르에서 단 7분 만에 프랑스 왕실 보석 8점이 사라졌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은 2013년 시작한 대규모 보수 공사로 2023년부터 사실상 폐관 상태다. 당초 2037년으로 잡았던 재개관 목표는 이제 2043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때 세계 문화를 가장 안전하게 보존한다고 자부하던 박물관들이 정작 자신들의 유물조차 지키지 못한다.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은 이와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한다. 모든 전시품은 이집트 땅에서 나온 것이며, 그 서사는 철저히 이집트인의 시선으로 재구성된다. 관람 동선은 피라미드를 향해 점점 가까워지도록 설계되어 있어, 마지막 갤러리에 이르면 유리창 너머로 실제 피라미드가 눈앞에 다가온다. 유물과 유적,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시선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개관 첫 달, 박물관은 하루 평균 1만9000명의 관람객을 맞이했다. 주말에는 2만5000명을 넘기기도 했다. 정부가 목표로 내건 연간 500만 명은 이미 무난히 달성될 전망이다.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카이로 서부 전체를 아우르는 관광벨트의 핵심 축이다. 인근에 들어서는 고급 호텔과 컨벤션센터, 새로 개장한 스핑크스 국제공항, 그리고 아직 공사 중인 메트로 3호선 연장선까지, 모두 하나의 큰 그림 안에 들어 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도심에서 20km 떨어진 위치 탓에 교통 불편은 여전하고, 개관 초기 폭우로 주차장이 물웅덩이가 되어 관람객들이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일본국제협력기구의 차입금 상환 부담과 외국 자본 의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성장통으로 불린다. 문화유산의 물리적 소유권과 서사적 주도권을 원산지 국가가 되찾았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2025년 카이로가 세계에 던진 가장 큰 메시지다.

한국에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해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 문화재는 약 22만 점에 이른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돌려달라는 목소리를 내왔다. 이제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할 때다. 돌려받은 유산을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로, 누구와 나눌 것인가.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보존과 교육 시설 확장, 경복궁 일대를 하나의 문화 벨트로 묶는 도시계획, 제2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장기 구상은 모두 그 연장선에서 함께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카이로는 이미 답을 보여줬다. 유물의 가치는 그 크기나 숫자가 아니라, 그 유물이 놓인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달려 있다. 유럽이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균열 사이에서 고민하는 동안, 카이로는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머지않아 세계 곳곳에 닿을 것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환율 급등에 증권사 외환거래 실적 ‘와르르’
  • 조세호·박나래·조진웅, 하룻밤 새 터진 의혹들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7,123,000
    • -1.22%
    • 이더리움
    • 4,720,000
    • -0.61%
    • 비트코인 캐시
    • 853,500
    • -2.79%
    • 리플
    • 3,104
    • -4.58%
    • 솔라나
    • 206,300
    • -3.73%
    • 에이다
    • 652
    • -2.25%
    • 트론
    • 426
    • +1.91%
    • 스텔라루멘
    • 375
    • -1.83%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860
    • -2%
    • 체인링크
    • 21,210
    • -1.3%
    • 샌드박스
    • 220
    • -3.5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