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구조 전환 꾀해 틈새 공략하고
기업·인재 묶어둘 지원책 강화해야

인공지능(AI)은 이제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미국과 중국은 압도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자본력으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3강을 목표로 AI 인프라를 확충하고, 산업 전반에 활용을 확산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AI 기술·서비스를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대규모 AI 센터를 감당할 전력 인프라 확충 등 넘어야 할 장벽은 여전히 높다.
AI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이야말로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국가 에너지 믹스를 재설계할 시점이다. 단순히 발전 설비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 소비 전력을 분산·독립형 구조로 전환해 기후위기 대응력을 높이고, 각 생활·산업 단위의 에너지 독립을 추구하면서, 그로 인한 잉여 전력을 AI 센터에 공급하는 구조로 에너지 믹스를 재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분산·독립형 발전 시스템을 AI로 최적화하고 상용화한다면 이는 전 세계가 찾는 매우 독특한 전략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산형 접근은 에너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I 센터 자체도 분산 고도화 모델로의 전환에 도전해야 한다. 갈수록 AI 수요는 확대될 것이고,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이 어려운 국가나 지역, 또는 제조 현장 가까이에서 실시간 처리가 필요한 곳에서는 소규모 고효율 센터가 필수가 된다.
최근 선보인 ‘바로AI’가 그 해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평택의 한 지식산업센터 건물 안에서 250~500KW 소비전력과 25평 공간만으로 400장의 GPU를 구동하는 저전력·무소음·무열의 AI센터인 ‘바로스페이스’가 구축되었다. 기존 대규모 센터가 수천 평의 부지와 막대한 냉각 설비를 필요로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에 국산 AI 반도체 기술이 더해지면 분산형 전략은 더욱 강력해진다. 퓨리오사AI가 개발한 신경망처리장치(NPU) ‘레니게이드’는 GPU 대비 2.3배 이상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며, 경쟁사 제품 대비 랙당 2~3배의 토큰 처리 성능을 실현한다.
이 회사가 메타의 1조2000억 원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독자 노선을 택한 것은 한국이 분산형 AI 생태계의 핵심 기술을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테크기업과 인재들이 한국에 남아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사회적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분산형 AI 응용에 있어서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압축적으로 확보한 세계적인 제조 노하우가 숙련기술자들의 은퇴로 말미암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반도체 공정의 미세 조정, 조선소의 용접 기술, 자동차 부품의 품질 검수 등 현장에 축적된 암묵지를 데이터화하지 못하면 영원히 사라진다. 이들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젊은이들이 없다면 서둘러 데이터화하여 피지컬 AI에게 전수해야 한다.
이러한 버티컬 데이터는 오직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분산형 AI’ 모델의 핵심 자산이다. 범용 AI는 미국이 선점했지만, 특정 산업과 공정에 특화된 AI는 해당 산업의 데이터를 가진 나라만이 구축할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기에 정부가 나서서 이와 같은 전환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제조 현장 근처에 분산 배치된 소규모 AI 센터가 저전력 국산 NPU로 실시간 공정을 학습하고 최적화하는 구조야말로 한국형 AI 생태계의 차별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 세상에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응용 분야 개척에 도전해야 한다. 트럭운송사업자였던 맬컴 매클레인이 1953년 컨테이너를 상용화하면서 글로벌 무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운용체제(OS)를, 애플이 스마트폰 플랫폼으로 혁신을 주도했듯이, 이제는 분산형 AI가 작동하는 새로운 산업 표준과 플랫폼을 선점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 없는 항해는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AI 강국 경쟁은 GPU 규모가 아니라 철학과 구조로 결정된다.
분산 에너지로 기존 전력을 AI에 재배치하고, 분산형 데이터센터와 국산 저전력 칩으로 인프라를 효율화하며, 산업 DNA를 데이터화하여 분산형 버티컬 AI를 구축하는 나라. 대규모 자본 없이도 AI 생태계의 핵심 틈새를 장악하는 분산 고도화 전략이 세계 3강 AI 국가로 가는 또 다른 현실적 경로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