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된다. 이 중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해 일반 시민에게 발생한 중대재해를 의미한다.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동일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 동일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 10명 이상이 발생할 때 성립한다.
중대시민재해와 관련하여 현행 법률은 특정된 결함 기준과 공중이용시설의 범주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중대시민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나 형식만 따지는 기준은 실제 사고의 심각성과 사회적 파장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싱크홀(땅꺼짐) 사고다. 일반 시민들은 도로상에서 발생한 땅꺼짐 사고는 당연히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도심지에서 발생하는 지반 침하로 차량이 추락하거나 보행자가 부상을 입는 사고는 중대시민재해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땅꺼짐이 발생한 도로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공중이용시설’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고 원인 조사나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미흡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공동주택인 아파트가 붕괴되어 사망사고가 발생할지라도 중대시민재해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건설회사의 부실시공이나 관리주체의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가 발생해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사고가 발생해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 시민의 안전이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질 수 있다.
작년 말,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항공기 충돌 사고는 중대시민재해의 정의가 얼마나 협소한지를 보여준다. 공중이용시설의 범위에 여객터미널은 해당하지만 활주로나 항행안전시설은 해당되지 않는다.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공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한 사고가 법적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그 피해는 책임의 공백 속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꼼꼼한 안전망 구축해 사각지대 없애야
이러한 법적 공백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구조적으로 방기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법이 규정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발생한 피해는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는 피해자 권리침해와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를 의미한다.
중대시민재해의 범위를 도로상의 땅꺼짐, 공동주택, 학교 교육시설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법은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더 이상 중대시민재해가 법의 사각지대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