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구축해 일할 만하면 ‘임기 끝’
기관장 장기재직 등 행정 개선해야

해외에서 한국문화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며 한류의 지속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절차적 조정이 아니라 행정 시스템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 문화교류 현장에서 경험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짚어보자.
2015년, 필자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기반정책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한국문화의 정수를 소개하기 위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관장 토머스 캠프벨(Thomas P. Campbell)은 향후 5년간의 전시계획이 가득 찬 중장기 전시 계획표를 직접 보여줬다. 그러면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한국의 훌륭한 미술을 소개하고 싶지만 5년 이후의 계획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하였다.
캠프벨 관장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전임자인 몬테벨로(Montebello)는 1977년부터 2008년까지 재직했다. 미국 서부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LACMA에는 마이클 고반(Michael Govan)이 2006년 이후 현재까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들은 관장으로 재직하며 높은 성과를 보였기 때문에 장기 재직이 가능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미국의 대표적 미술관의 관장들이 이렇게 오래 재직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한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이다. 장관의 임기는 보통 1년 남짓이다. 그리고 미술관장의 임기는 3년이며 연임은 드물다. 이처럼 짧은 임기 구조 속에서는 미국처럼 5년 이상을 내다본 중·장기 전시 및 국제 교류 계획을 수립·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필자가 2017년부터 2019년 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하며 중장기 계획을 토대로 전시를 추진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노력했지만, 관장 임기가 제한되어 있는 시스템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2019년 LA한국문화원장으로 근무할 때 다른 기관에서 주최한 K팝 공연 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의 공연은 계획했던 것을 모두 보여주지 못했다. 공연단이 관행대로 ESTA(전자여행허가) 비자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일부 입국이 거부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사례를 거울삼아 LA한국문화원은 K팝 공연행사를 위해 약 2년을 준비했다. 그러나 공연비자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만 달러를 초과하는 비용도 부담이었지만, 변호사들이 이 업무 자체를 기피하였다. 공연비자 발급 신청에는 초청 기관의 세금 보고서를 포함하여 많은 서류가 필요하고 목표한 기간에 비자 발급이 가능할지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문화를 현지에 홍보하고 국가 간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는 기관이 해외의 한국문화원이다. 문화원장의 임기는 3년이다. 문화가 발달하고 관련 기관 및 기업이 많은 경우에는 이들과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3년도 부족하다. 어느 정도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일을 할 만하면 임기가 끝나서 귀국해야 한다. 이는 매번 반복된다. 기업이라면 해외 지사장을 이렇게 운영하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구축한 네트워크가 사장되기 때문이다.
효과적 업무 수행을 위해 전문성 및 지속적 네트워크가 필요한 지역의 문화원장은 주재관 전문직위를 운영하며 장기간 재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외 문화원은 문화교류 사업비가 많지 않다. 그러므로 문화원장은 문체부의 다양한 부서와 소통하며 문화행사를 현지에 유치함으로써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다. 문체부 출신이 아닌 문화원장이 많이 임용되는 현실에서 이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문체부에서 전문성을 쌓은 공무원이 문화원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체부와의 협력 노력을 문화원장의 성과 평가 요소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