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집중 막기 위해 삼권분립 강조
‘선출직 우위’ 발상은 치명적 독선

이재명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그는 신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에서 “권력에도 서열이 있다”고 발언했다.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비선출권력) 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임명권력은 2차적으로 권력을 나눠 가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주권을 위임받은 곳이기에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면 된다”고 했다. 사법부 독립이 ‘사법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므로 ‘국민의 주권의지’에 종속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때 정치가 사법에 종속됐다고 했다. 정치검찰이 그 결정적 증거라고 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이 망할 뻔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치검찰은 ‘검찰의 일탈’로 사법부 독립과는 무관하다. 그의 주장은 하나로 모아진다. 모든 정치는 국민의 통제, 즉 ‘민(국회)의 통제’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삼권분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삼권분립 헌법의 전형인 미국을 보자. 미국 헌법은 우리로 치면 헌법 제1·2·3조에서 각각 입법·행정·사법권을 명확히 구분해 규정하고 있다. 일찍이 ‘건국의 아버지’들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한 장치로 엄격한 삼권분립을 강조했다. 제임스 매디슨 등이 주도하여 쓴 ‘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이 그 증빙이다. 연방주의자 논집은 “‘권력의 분립’은 권력이 완전히 고립된 상태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입법·행정·사법이 서로 얽혀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자유가 보장된다”고 했다. 삼권분립을 ‘자유의 원천’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입법권은 본성상 팽창하는 성질을 지니며, 다른 권력의 영역을 침범할 위험이 가장 크다”고 경고했다. 입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직접적 민주적 정당성을 얻었다는 이유로 권력 우위를 차지할 경우, 그 위험이 가장 크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그들은 “만약 사람들이 천사라면 정부는 필요 없을 것이다. 어느 한 권력이 다른 권력을 압도하지 못하게, 각 권력이 서로 견제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의회 다수파가 권력 우위를 주장하면 ‘의회 독재(parliamentary despotism)’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입법권력 우위론은 미국 건국 아버지의 경고에 반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지난 9월 2일 정기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내란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며 추진의사를 밝혔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를 결정한 지귀연 판사의 행태라든지 그 이후에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민주당은 현재 법원을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국회 주도의 ‘특별(전담)재판부’ 설치는 전혀 설득적이지 않다. 인위적으로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정치적 고려가 개입됐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기존 법원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사건만 떼어내 별도로 재판부를 구성한다면 오히려 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 사법제도는 사건배당을 ‘무작위·전산배당’으로 처리해 정치의 사법 개입을 차단한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특정 사건을 특정재판부가 전담하게 하면 ‘정치 재판부’ 설치를 허용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재판 결과는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정치재판을 해 놓고 공정하니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민주권을 말하면서 내란 특별재판부를 정당화하려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치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재판부를 만들면 삼권분립 원칙이 지켜질 수 없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유지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국민주권’을 말할 수 없다.
모든 직을 선출직으로 할 수 없다. 전문성과 자격을 갖춘 인물을 선택하는 데 투표는 적절하 한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법관, 의사, 교수를 모두 투표로 뽑아야 한다. 국민은 ‘헌법을 동의’하는 과정에서 사법부에도 권력을 위임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선출 권력이어서 사법부 위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자체가 ‘반민주적이고 반법치주의’ 적인 것이다. 선출직 우위론이 맞다면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탄핵하거나 당선무효처분을 내려서는 안 된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일찍이 ‘다수의 전제정치’를 자유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敵)으로 경고했다. ‘선출권력 우위론’은 거대한 착각이거나 치명적 무지에서 비롯되었을 소지가 다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