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 국민(39만 명에 불과하지만) 4분의 1이 생체 시료를 제공했고 영국 역시 바이오뱅크 프로젝트로 국민의 1%인 50만 명의 유전체(게놈) 정보를 해독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 대다수는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 못하겠지만 ‘디지털 가죽(생체 정보)’은 남기는 셈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은 이름과 함께 생체 정보도 남긴다. 예를 들어 1953년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은 55년이 지난 2008년 자신의 게놈 서열을 해독해 공개했다.
1년 반 동안 세계 최고령자 타이틀을 보유하다 작년 8월 117세로 세상을 떠난 스페인의 마리아 브라냐스 여사도 그런 경우다. 브라냐스는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건 살아있다는 것뿐”이라고 겸손해하면서 과학자들이 자신의 장수 비밀을 파헤치는데 기꺼이 협력했다.
지난주 학술지 ‘셀 리포츠 의학’ 사이트에는 브라냐스의 생체 시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고한 논문이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브라냐스의 기록적인 장수 비결의 8할은 유전자 때문이고 나머지가 생활 습관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를 다루는 뉴스는 복권 당첨에 비유하고 있다.
생체 시료 제공자가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논문에서는 관례에 따라 M116이라는 번호를 쓰고 있다. M은 마리아에서, 116은 2023년 생체 시료를 얻었을 때 나이로 당시 브라냐스의 건강은 좋은 편이었다.
게놈 분석 결과 M116은 수명과 관련된 여러 유전자가 장수에 도움이 되는 변이형인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유전자 7개는 부모 양쪽에서 장수 변이형을 받았는데, 비교를 위한 대조군 수백 명에서는 이런 경우가 하나도 없었다. 정말 로또복권 1등 당첨 수준의 행운인 셈이다.
이에 따라 M116은 콜레스테롤 수치 등 각종 대사 지표도 건강 범위 내로 나왔고 대부분이 비교한 노인들(한 세대나 젊은)의 평균보다 좋았다. DNA메틸화 패턴을 분석해 산출한 세포의 생물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무려 23세나 젊은 것으로 나왔다. M116의 세포는 93세인 셈이다.
지난해 브라냐스 여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두 딸의 나이가 각각 94세와 92세였다. 세포의 생물나이가 딸들의 나이와 동년배였던 셈이다. 물론 어머니의 게놈을 물려받은 두 딸도 세포의 생물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을 가능성이 크다.

M116이 초백세(110세 이상)가 돼서도 비교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유전적 행운과 함께 건강한 생활 습관도 한몫했다. M116은 술담배를 하지 않았고 건강식이라는 지중해식단을 유지했다. 특히 매일 요거트를 3개씩 먹었는데, 그 덕분인지 대변 분석 결과 장내유익균인 비피도박테리움 수치가 높았다. 비피도박테리움은 노화를 늦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 대다수는 나이가 들수록 수치가 떨어진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 서평란에는 ‘Seven Decades(70년)’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이 소개됐는데, 인류의 기대수명이 길어진 건 지난 100년 사이의 일이지만 원래 인간은 장수하게 진화했다는 내용이다. 즉 심각한 유전적 결함이 없는 한 인체가 70년은 무난히 작동하게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나 좋은 유전자 조합을 만나면 이런 기간이 최대 20년 연장돼 90년은 버틴다. 그리고 예외적인 조합에 걸리면 100년을 유지하고(백세인) 그 극단에서는 110년까지 간다(초백세인). 1907년 태어난 2500만 명 가운데 117세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브라냐스 여사뿐이었으므로 로또 1등(814만분의 1)보다도 낮은 확률인 셈이다.
100세 시대라지만 실제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건 여전히 드문 일이다. 나이 80, 90에도 건강을 유지해 누군가가 비결을 묻는다면 “부모님 덕분”이라고 말하는 게 그저 겸손이 아니라 과학에 기반한 대답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