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다른 시선

입력 2025-09-23 18:46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진료실 창밖으로 산책줄을 단 강아지들이 지나간다. 꼬리를 흔들며 세상의 냄새를 모조리 수집하려는 그들 곁을, 창틀 위 고양이는 눈만 반쯤 뜬 채 지켜본다. 강아지는 무리에 기대어 움직임 속에서 안심을 얻고, 고양이는 익숙한 햇빛 자리에 몸을 말아 평온을 찾는다. 어느 날 문득,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들이 이 둘 중 누구와 더 닮았느냐를 묻는 우리의 태도 자체가 잘못된 질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닮음이 아니라 다름의 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나는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죠?”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소리는 공격이기보다 구조 요청일 때가 많다. 불규칙한 형광등, 알 수 없는 향, 예기치 않은 접촉 - 새로운 자극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 세계는 그들에게 홍수처럼 넘친다. 우리가 흔히 ‘문제행동’이라 부르는 몸짓은, 침수된 방에서 물을 퍼내려는 동작과 같다. 낯선 마트 대신 익숙한 동선을 고집하고, 예고 없는 변화에 멈춰 서는 일은, 살기 위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강아지처럼 매일 밖으로 나와 무리에 적응하라”고 요구한다. 교육의 이름으로 더 큰 소음과 더 잦은 접촉을 주입하고, 버티지 못하면 약을 늘린다. 약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극심한 불안과 자해의 고리를 끊어 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약물은 분명하게 제 몫을 한다. 하지만 약이 ‘우리 기준’에 맞추기 위한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치료의 목표는 순응이 아니라 고통의 완화, 그리고 자기 방식의 생활을 회복하는 일이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보호자에게 묻는다. “산책이 꼭 필요할까요, 아니면 창가 햇빛이 더 큰 안심일까요?” 예고 가능한 시간표, 소음이 적은 공간, 질감과 향을 선택할 권리, 대화의 속도를 조절할 여유-이런 작고 구체적인 조정들이 자폐적인 삶을 덜 고통스럽게 만든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강아지의 리듬을 가르치는 대신, 고양이의 리듬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름을 훈육의 대상으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그들의 세계도 -그리고 우리의 세계도-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흰자는 근육·노른자는 회복…계란이 운동 식단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 [에그리씽]
  • 홍명보호, 멕시코·남아공과 A조…'죽음의 조' 피했다
  • 관봉권·쿠팡 특검 수사 개시…“어깨 무겁다, 객관적 입장서 실체 밝힐 것”
  • 별빛 흐르는 온천, 동화 속 풍차마을… 추위도 잊게 할 '겨울밤 낭만' [주말N축제]
  • FOMC·브로드컴 실적 앞둔 관망장…다음주 증시, 외국인 순매수·점도표에 주목
  • 트럼프, FIFA 평화상 첫 수상…“내 인생 가장 큰 영예 중 하나”
  • “연말엔 파티지” vs “나홀로 조용히”⋯맞춤형 프로그램 내놓는 호텔들 [배근미의 호스테리아]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4,393,000
    • -2.07%
    • 이더리움
    • 4,551,000
    • -3.44%
    • 비트코인 캐시
    • 856,500
    • +0.23%
    • 리플
    • 3,057
    • -1.7%
    • 솔라나
    • 199,600
    • -3.25%
    • 에이다
    • 622
    • -4.75%
    • 트론
    • 430
    • +0.94%
    • 스텔라루멘
    • 361
    • -3.73%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610
    • -1.03%
    • 체인링크
    • 20,440
    • -3.58%
    • 샌드박스
    • 212
    • -3.64%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