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콘텐츠·다양한 극장 경험에
서사 갖춘 복합문화공간 거듭나야

한국 영화가 불황을 만났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홀드백’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다. 홀드백은 극장에서 개봉된 영화가 다른 플랫폼에서 상영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다른 플랫폼’이란 전통적으로 TV나 IPTV 등을 일컫지만, 최근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홀드백은 극장의 수익을 보호하려는 목적 때문에 생겨났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이 기간을 늘려야만 극장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효과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한국 영화산업이 플랫폼의 경쟁이라는 문제를 만난 건 사실이다. 다만 이렇게 해법을 찾으면,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홀드백은 그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영화 시장은 이미 극장에서 OTT로 거대한 이동을 마쳤다.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웨이브 등 플랫폼은 관객의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굳이 극장까지 가지 않고도, 거실 소파에 앉아 세계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홀드백 기간을 늘린다고 해서 관객이 다시 대규모로 극장으로 돌아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불법다운로드나 해외 경로를 통해 영화를 미리 보려는 시도를 자극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한국 극장이 맞서 싸우고 있는 상대가 더 이상 넷플릭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5년 현재 프로야구 KBO 리그의 누적 관중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단일 시즌으로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극장으로 향하던 관객은 진작부터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팬데믹 이후 관객은 질적으로 다른 현장 경험에 목말라 있다.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떠들고 응원하며 현장의 에너지를 공유하는 경험은 극장이 제공하는 집단 관람의 쾌감과 경쟁 관계가 되었다. 한국 영화의 진짜 라이벌은 OTT가 아니라 야구장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의 불황을 극복할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극장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 콘텐츠다. 한국 영화산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극장에 오고 싶게 만드는 우수한 영화를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기생충’이 돌풍을 일으키고, ‘헤어질 결심’이 주목받은 까닭은 모두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완성도 때문이다.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도, ‘범죄도시’ 시리즈가 꾸준히 흥행하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웃음과 눈물, 액션의 쾌감은 OTT 시대에도 여전히 힘이 세다. 스토리와 완성도가 부족한 영화는 아무리 홀드백을 늘려도 떠나는 관객을 붙잡을 수 없다.
둘째, 관객의 문화적 경험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영화 한 편의 재미만으로는 관객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극장 자체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야구장에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팬덤이 있고, 상대에 맞서 싸우는 게임이 있고, 치킨과 맥주의 즐거움이 있고, 뜻밖에 찾아오는 ‘키스타임’이 있다. 게다가 야구장은 영화와 비슷한 가격으로 서너 시간을 거뜬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렇게 야구장은 매우 다양한 경험 구조를 통해 관중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영화 관람이 특별한 이벤트를 결합하는 문화 경험이 될 때야 비로소 극장은 야구장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영화산업 내부의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제작사, 배급사, 극장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공동의 목표, 즉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라는 대의 아래 힘을 합쳐야 한다.
예컨대 특정한 영화를 개봉하면서 극장 전체를 영화의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감독과 배우가 의례적인 무대인사만 끝내고 사라지지 말고, 팬들과 함께 야구를 관람하듯 단체 관람 이벤트를 열어 보자.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영화를 중심으로 한 팬덤과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홀드백이 토론의 주제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영화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핵심이라고 오인하는 순간, 더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된다. 돌파구는 홀드백 같은 제도의 미세 조정이 아니라, 콘텐츠의 질적 경쟁력과 극장 경험에 있다. 제도를 넘어서서 문화와 관습을 새롭게 구조화하는 일을 통해 해결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극장이 야구장의 열광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경쟁력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춘 한국 영화의 부흥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