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는 이미 일상의 풍경이 됐다. 검색 대신 목소리 한 번으로 답을 얻고, 글을 대신 쓰며, 의료·교육·행정·금융 현장에서도 활용된다. 효율과 편리함을 높인 가치는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정답을 빨리 얻는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존재를 지탱하는 힘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다. 따뜻한 눈빛,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삶을 살아 있게 한다. 지식은 순간이지만 관계는 영원하다. 이것이 바로 ‘관계지능(RQ·Relational Intelligence)’이다. IQ가 문제 해결의 힘이고, EQ가 감정을 이해하는 힘이라면, RQ는 타인의 삶에 다가가 건강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관계지능은 단순한 감정 교류를 넘어 사회 전체의 리듬을 조율한다. 오케스트라가 함께 호흡할 때 교향곡이 완성되듯, 사회도 관계 속에서 품격과 깊이를 드러낸다. 경기도 AI 도민강사 양성과정 현장에서도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처음엔 각자 목소리만 내던 사람들이 조금씩 귀를 기울이며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자, 하나의 작품 같은 성과가 만들어졌다. 이는 단순한 지식 축적의 결과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싹트고 마음으로 길러낸 결실이었다.
기업 리더십도 뿌리는 같다. 한때는 한 사람의 결단과 능력이 성과를 이끌었지만, 오늘 존경받는 리더는 홀로 빛나는 인물이 아니다. 함께 빛을 나누고 실패의 무게까지 동행과 나누는 이가 진짜 리더다. 정치 또한 다르지 않다. 보고서와 데이터보다 귀한 것은 결국 사람의 눈빛과 대화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관계의 예술이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역설적으로 정보는 넘치는데 관계가 사라지고 있다. 바로 그 공백이 정치의 위기이며, 공동체의 울림을 앗아가는 것이다.
고령사회의 돌봄 정책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AI 말벗이나 디지털 기기 확충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을 지켜주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이웃의 눈빛, 지역사회의 연대다. 정부는 제도의 뼈대를 마련하고, 기업은 기술과 자원을 나누며, 지역 공동체는 생활 속 돌봄을 실천해야 한다. 이 세 축이 균형을 맞출 때 돌봄은 단순한 안전망을 넘어 공동의 자산으로 자리 잡는다. 사회의 품격은 관계망의 건강성에 달려 있다.
하버드대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저서 ‘우리 아이들’에서 공동체 해체가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줬다. 아이들의 성취를 좌우한 것은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이었다. 이웃과 공동체의 신뢰가 약해질수록 아이들은 기회의 날개를 잃었다. 결국 인간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AI는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낼 수 있지만, 따뜻한 손길과 진심 어린 눈빛은 대신하지 못한다. 인간의 존엄은 관계 속에서만 드러난다. 기술이 하지 못하는,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마음에서 우러난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다.
공동체의 회복이 곧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지식은 순간에 스쳐 지나가지만, 관계는 영원히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