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한 통화 운용으로 금가치 뛰어
대안화폐 가능성에 비트코인 주목

최근 전 세계에 뚜렷한 경제 현상 중 하나는 ‘돈이 많이 풀렸다’는 사실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영국 중앙은행(BOE)의 실물경제(GDP·국내총생산) 대비 보유자산 비율은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작게는 30%포인트, 많게는 55%포인트 상승했다. 국가부채가 폭증한 일본의 경우는 이 비율이 무려 120%포인트나 올랐다.
참고로 중앙은행의 보유자산이 늘었다 함은 그만큼 돈을 찍어내 국채 등 자산을 시장에서 직접 매입했음을 뜻한다. 이러한 사정은 신흥국도 비슷한데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대부분 국가의 중앙은행 자산이 거의 수직 상승한 모습이다.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변화하는 세계질서’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인류 역사상 제국의 통화정책은 3단계로 진행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 첫 단계는 금리만 조절하는 소극적 통화정책이고, 두 번째는 금리정책과 자산매입(양적완화)을 혼합한 보다 적극적인 통화정책 단계다. 마지막은 중앙은행이 정부부채를 늘리는 데 적극 앞장서는 단계인데 미국은 이미 이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의사결정에 적극 간섭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마지막 단계는 더 이상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지속된다. 그런데 경제엔 공짜가 없기에 이에 따른 폐해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요컨대, 예전과 달리 물가가 불안하고 집값이 요동치고 부와 소득의 격차가 커지며 사회 갈등이 불거지는 건 그 부작용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팽창과 국가부채의 급증, 끈적끈적한 물가에 가장 큰 수혜를 입는 자산이 바로 금이다. 금은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보험 성격의 자산이자 날로 부실해지는 화폐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다.
미국의 GDP 대비 총통화 비율은 2000년 50%에서 최근 80%까지 꾸준히 올랐는데 이 기간 중 금값은 10배 이상 튀었다. 앞으로도 돈이 과도하게 풀린다면 금은 반드시 이를 정직하게 반영할 것이다.
그런데 장기간 금은 달러뿐 아니라 사실 모든 통화에 비해 올랐다. 2013년 이후 달러가 꾸준히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금값은 3배나 올랐는데 이에 달러보다 약했던 다른 통화를 기준으로 보면 금값은 더 많이 올랐다. 가령 우리 원화 표시 금값도 같은 기간 중 약 4배 상승했다.
앞으로도 중앙은행이 통화를 계속 방만하게 관리하고 정부부채를 지원하느라 둘이 더 긴밀해지고 그 결과 물가상승으로 실질금리가 낮아진다면 금에는 더 없는 호재다. 이런 배경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을 계속 적극 사 모으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 보유액에서 금의 비중은 팬데믹 때만 해도 9% 정도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15%에 달한다. 특히 중국의 외환보유액 대비 금의 비중은 5년 전 3.5%에서 지금은 7.5%로 높아졌다.
제한된 매장량과 채굴 기술의 발전 한계 또한 금 공급을 제약하는 요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도 덩달아 뛰고 있는데 금의 대체재로 관심을 둘 만하다. 암호화폐도 길게 보면 대안 화폐로서 한 자리를 꿰찰 공산이 크지만 아직은 위험자산 성격이 강하고 가격 변동성도 심하다.
금과 비트코인 관계에서 흥미로운 점은 금 1온스당 비트코인 1개 가격이 기술적으로 4만 달러의 저항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를 돌파한다면 사람들이 금보다 비트코인을 더 선호하고 화폐로 인정한다는 뜻이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만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