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양날의 검’ 시뮬레이션을 보는 눈

입력 2025-09-2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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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얼마 전에는 친구 동생으로부터 “이 세상은 다 시뮬레이션일까요?”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고, 왜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어서, 메일을 받은 지 꽤 여러 날이 지났지만 답글을 못 보내고 있다.

시뮬레이션이란 현실 세계를 흉내내는 가상 실험이다. 내일 비가 올지 맑을지를 알려주는 기상 예보도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대기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수많은 계산을 거쳐 가능한 ‘내일의 하늘’을 미리 재현하는 것이다. 항공기 설계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거대한 비행기를 만들기 전, 컴퓨터 속에서 날개가 받는 바람의 흐름과 압력을 수없이 반복 시험해 본다. 자동차에 대한 모의 실험도 마찬가지다. 굳이 수십 대의 차량을 박살내지 않고도, 컴퓨터 속에서 충돌 상황을 재현해 안전성을 가늠한다. 이처럼 시뮬레이션은 현실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게 해주는 ‘연습장’이다. 그러나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1901~1976)의 저서 ‘부분과 전체’ 초반에 등장하는 한 논쟁이 떠오른다. 탄소 한 원자가 산소 두 개와 결합해 탄산 분자가 만들어진다고 할 때 교과서 일러스트처럼 ‘원자에 갈고리 단추를 달아 두 개가 서로 걸린다’는 식으로 그려 놓으면 이해가 쉬운가, 아니면 오히려 본질을 가리는 함정이 되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실제로 원자 결합은 눈에 보이는 막대기 모양의 선이 아니고, 분자 역시 구슬처럼 반짝이는 공 모양이 아니다. 단순화된 그림은 이해를 돕지만, 그 그림이 곧 실제 모양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시뮬레이션도 마찬가지다. 이 방법은 전자의 확률 분포, 기후 모델 속 미래의 날씨, 초기 우주의 진화처럼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직관을 키우게도 해준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은 너무 그럴 듯해서 오히려 위험하다. 정교하게 움직이는 행성 궤도의 영상은 마치 실제를 직접 본 듯한 착각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는 선택된 가정, 단순화, 생략된 변수가 숨어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말처럼, 입력된 모델이 잘못되면 아무리 근사한 그래픽도 결국은 허상일 뿐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지적했듯, 우리가 보는 그림은 본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기도 한다.

그래서 시뮬레이션은 양날의 검이다. 새로운 과학적 인식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지만, 왜곡된 확신을 심어줄 위험도 함께 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이다. 하이젠베르크가 던진 물음, “이 그림은 이해를 돕는 창인가, 아니면 우리를 가두는 틀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친구 동생의 질문에, 나는 아마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시뮬레이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쓰는 모든 시뮬레이션은 진짜 세계를 향한 창일 수도, 착각의 거울일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그 경계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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