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김영용 칼럼] ‘노동가치는 시장서 결정된다’는 진리

입력 2025-09-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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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前 한국경제연구원장

생산요소 가치는 가격 넘을수 없어
‘동일 가치 노동’ 인위적 판단 못해
고용 유연화 통한 시장질서 따라야

정부가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할 예정이다. 그런데 그 기준은 이미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 고용 평등법)’의 제8조에 명시되어 있다. 즉 노동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작업 조건과 학력, 경력, 근속연수 등이 같고, 동일한 사업장에서 노동이 이뤄지는 경우다. 또 근로기준법 제6조는 남녀, 국적과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려는 것은 남녀는 물론, 이른바 비정규직을 비롯한 모든 고용 형태에 대해 일반 원칙을 수립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올해 안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고 내년 하반기에 시행하기 위해 임금 실태와 관련된 정보 수집을 올해 11월까지 완료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에서 핵심 쟁점은 동일 가치 노동의 식별이다. 즉 특정 생산물의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노동의 가치는 어디서 어떻게 결정되는가이다. 노동시장이 아무런 간섭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경우를 보자. 노동은 기업이 최종 생산물(특정 기업이 생산하는 최종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는 생산 요소 중 하나다. 즉 노동을 비롯한 모든 생산 요소는 최종 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생기는 유발(誘發) 수요다. 기업은 자신이 생산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 평가를 반영하는 가격을 받고 판매하여, 이를 노동에는 임금, 자본가에는 이자, 토지와 건물에는 임차료(렌트), 불확실성을 성공적으로 떠맡은 기업가에는 이윤(실패한 기업가에는 손실) 형태로 처분한다. 그 합은 당연히 최종 생산물의 가격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의 가치(기업의 노동 비용)는 최종 생산물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임금은 실제로 노동을 고용한 기업이 자체적인 규율(조직 질서)에 따라 지급하지만, 그 가치는 자유로운 노동시장에서 유발 수요와 이를 뒷받침하는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시장 질서). 그리고 노동시장이 자유롭게 움직이면 동일 가치 노동은 동일 임금을 얻는 경향을 보인다.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시장도 완벽하지 않으므로 동일 가치를 가진 두 노동 간의 임금은, 그 차이가 벌어지거나 줄어들기를 반복하면서 장기적으로 같거나 근사해진다는 뜻이다.

반면에 정부가 위의 기준에 따라 동일 가치를 식별하여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방식은 논리적 출발점이 틀렸다. 외형적 기준이 같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하는 행동까지 고려하여 노동의 동일성 여부를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는 두 노동이 과연 동일 가치를 가지는 것인가를 두고 끊임없는 송사(訟事)가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법원은 ‘그렇게 볼 수 있다, 또는 없다’라는 판결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두 노동자가 동일 임금을 받고 있으면 두 노동이 동일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즉 특정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으로 노동의 가치가 평가되는 것이지, 두 노동 가치의 동일성 여부를 평가하여 임금을 맞추고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노동 관련 자료의 수집은 노동시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왜곡하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 머물러야지, 노동의 동일 가치 여부를 식별하거나 ‘이런 세상이면 참 좋겠다’라는 열망 성취를 위한 정책 자료로 사용한다면 자유 노동시장의 질서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은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구조적 장애물을 없애야 실현될 수 있다. 이른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없어지도록 채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임금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노동시장을 자유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우회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위는 문제의 문제성을 더욱 키우고 고질화할 뿐이다.

시장 안에는 수많은 개인과 조직이 존재하며, 이들은 행동 규칙을 준수함으로써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시장 질서 형성에 기여한다. 시장 안에 존재하는 기업은 조직체로서 이윤이라는 단일 목적 아래 주로 명령과 통제에 따라 움직이지만, 소비자들의 가치 평가에 의한 생산물의 가격과 그에 따른 생산 요소의 가치 결정은 시장 질서에 따른다. 결국 동일 가치 노동을 정부가 식별하겠다는 것은 모두의 이익을 크게 하는 시장 질서를 훼손한다.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은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없애는 유연화를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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