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데이터센터용 차세대 칩 공동 개발 가속
K-반도체에 기회이자 위기, 대응 전략 관건

엔비디아와 인텔이 손을 맞잡으면서 글로벌 반도체 판도에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엔비디아가 인텔에 약 7조 원(50억 달러)을 투자하고, PC·데이터센터용 차세대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면서 거대 연합군이 탄생했다. 양사의 전략적 협력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 분명한 기회이자 동시에 뼈아픈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인텔 보통주를 주당 23.28달러에 매입해 지분 4% 이상을 확보, 단숨에 주요 주주로 올라섰다. 단순한 재무 투자 차원을 넘어 공동 개발이 핵심이다. 양사는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네트워킹 기술을 결합한 차세대 칩을 함께 여러 세대에 걸쳐 공동 개발한다.
구체적으로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인텔은 엔비디아 맞춤형 x86 CPU를 제작하고, 엔비디아는 이를 자사 AI 인프라 플랫폼에 통합해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개인용 컴퓨팅 분야에서는 인텔이 엔비디아 RTX GPU 칩렛을 통합한 x86 시스템 온 칩(SOC)을 제작해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새로운 x86 RTX SOC는 세계적 수준의 CPU와 GPU 통합을 요구하는 다양한 PC에 탑재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인텔 CPU의 매우 큰 고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단순 협력을 넘어선 긴밀한 파트너십임을 시사했다.
이번 협력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은 발표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중장기적으로 인텔 파운드리와 손을 잡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황 CEO는 인텔에 대한 투자 발표 뒤 기자들과 가진 콘퍼런스콜에서 "우리는 항상 인텔의 파운드리 기술을 평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지만, 이번 발표는 전적으로 이 맞춤형 CPU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 당장 긍정적인 요인은 메모리 수요다. 엔비디아와 인텔의 협력은 AI 인프라 및 대형 데이터센터 시장을 직접 겨냥한 만큼, 여기에 탑재되는 고성능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는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게 HBM 최대 공급처다. HBM3(4세대), HBM3E(5세대) 등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차세대 제품인 HBM4(6세대) 역시 “초기 대량 생산 단계에서 최대 공급업체로 선두 자리에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도 퀄테스트(품질 검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는 HBM4 12단 개발을 완료하고, 샘플을 출하했다.
국내 장비·부품 업체에도 기회가 열린다. 테스트·검증, 후공정(패키징) 역량을 갖춘 중소 반도체 기업 역시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미국의 거대 기업의 협력하는 만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위치가 축소될 수 있다. 공동 개발 제품의 설계 사양이 바뀔 경우, 기존 생산 라인에 맞춰온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특히 장기적으로 엔비디아가 인텔 파운드리를 활용할 경우, 삼성전자가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 TSMC의 1강 체제가 강화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2분기 시장 점유율은 70.2%로, 직전 분기(67.6%) 대비 2.6%포인트(p) 확대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0.4%p 낮아진 7.3%에 그쳤다. 향후 엔비디아를 등에 업은 인텔의 추격 속도가 빨라지면 삼성전자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인텔 연합은 AI 반도체 생태계를 재편할 수 있는 변수”라며 “국내 기업은 메모리뿐 아니라 설계·패키징·인터커넥트 등 전후방 기술 전반에서 대응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