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는 더이상 먼 미래가 아닌,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현실이 됐다. 짧은 시간에 국지적으로 쏟아지는 집중호우는 과거의 강우 패턴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문제는 농경지와 수리시설이 여전히 수십 년 전에 조성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저수지, 양·배수장, 용·배수로 등 농경지를 지켜야 할 농업기반시설이 ‘기후변화 시대’를 버틸 만큼의 용량과 성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설물이 만들어질 당시 과거의 기상과 수문조건을 기준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관리와 운용을 철저히 해도 한계에 부딪힌다.
물론 현장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농어촌공사와 관계 기관은 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저수지 수위를 사전에 조절하고, 배수로 정비 및 배수장 가동 등 최선을 다한다. 실제로 재해 대응 매뉴얼은 해마다 개선되고, 인공지능(AI) 기반 ‘저수지 홍수 예·경보 시스템’ 구축, ‘예방중심의 재난관리 체계’ 강화 등 대응 체계도 한층 고도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폭우에서 확인했듯, 이런 노력만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규모의 물폭탄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다. 결국, 시설의 근본적 용량과 성능이 기후변화에 맞게 향상되지 않는다면 매년 반복되는 침수 피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이제는 기존 수리시설의 성능을 대폭 강화하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때다. 앞으로 30년, 50년, 그 이상의 강우량과 기후 패턴을 예측해 그에 맞는 용량과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시설 보수가 아니라, “농업인의 삶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침수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고 미래를 계획하는 삶은, 한 개인의 안락함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안정성과 국가 식량 안보까지 굳건히 하는 기반이 된다. 풍수해가 남기는 상실감은 ‘생애 동반자를 잃는 것과 맞먹는다’라고도 한다. 만약 이런 피해가 매년 반복된다면, 한 사람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무너진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연속적인 수해는 지역사회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강력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 관계 기관은 힘을 모아 농업 현장을 지킬 인프라 재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예방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복구비용을 절감하는 수준을 넘어, 재해로부터 농업인의 삶과 공동체를 지키는 가장 기본적이고 책임 있는 책무다. 나아가 이는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농촌과 안정적인 식량 생산 기반을 물려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것이다.기후변화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피해를 줄이는 것은 우리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는다면, 내년 여름에도 우리는 같은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 결단하고 준비한다면, 미래 세대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대한민국 농업의 내일을 지켜내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