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소가 의정부였다. 어떻게 가지?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나는 부고를 받든 청첩을 받든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문득 올해부터 다시 운행한다는 교외선 열차 생각이 났다. 교외선은 경의선의 지선으로 서울시의 교외를 순환 운행하던 열차였다. 일산 신도시가 건설된 다음 그곳에 새로운 전철 노선이 생기며 운행을 중단했다가 올해부터 다시 대곡, 원릉, 일영, 장흥, 송추, 의정부 간을 운행한다.
예전 교외선에 대해서는 거기에 얽힌 얘기도 참 많이 들었는데 정작 일산 신도시에 와서 살면서는 한 번도 이 기차를 타보지 못했다. 기차 색깔도 노란색으로 마치 동화 속 기차 같았다. 요즘 서울 가까이엔 단선 철로가 거의 없는데 이 교외선은 옛모습 그대로 단선 철로여서 승객이 타는 두 칸짜리 객차 앞뒤에 기관차가 따로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제일 앞쪽 기관차에 있던 기관사가 다시 저쪽 기관차에 가서 열차를 운행하는 식이었다.
일산 대곡역에서 의정부역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시간대마다 다르겠지만 주말이라 승객은 절반 정도였다. 문상을 가는 길인데도 기차 이름 그대로 교외의 전원을 지나가는데 너무 운치 있었다. 기차가 지날 때마다 땡땡땡 종을 치며 사람이 지키는 건널목도 많았다. 기차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우며 창밖 정취는 교외선 느낌 그대로였다. 중간중간 옛 교외선 폐역들도 쓸쓸하게 지나며 철길 옆의 삼잎국화와 같이 키가 큰 풀들이 차창에 닿을 듯 바람에 휘청거리는 모습도 싱그러웠다.
몇 명의 작가와 함께하는 대화방에 문상을 가는 사연과 사진을 올렸더니 한 작가가 부고에 올린 어머니의 연세를 보고 ‘이 분 역시 일본어 수업시대의 소녀였겠네요.’ 하는 댓글을 달았다. 아, 그렇구나. 이 친구의 어머니도 우리 어머니와 같은 일본어 수업시대를 사신 소녀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빈소에 도착해 상주를 위로하고, 다시 어머니의 연세를 물으니 실제로는 1927년생으로 98세인데 일제 강점기를 겪어내고 다시 6·25 난리까지 겪은 실향민으로 새로 호적을 만들 때 나이가 잘못 기록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다음 후배 시인으로부터 부고보다 더 먹먹한 문자를 받았다.
‘어머니 김해 허씨 연옥은 1927년 음력 12월 22일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건 물어보고 의심스러운 건 뒤져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고집이 세어 뜻을 굽히는 적이 없었고, 자기 세계 외에는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살아생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겪으셨고, 열일곱에 부모형제 헤어져 3대독자 함씨 집안에 시집오셨습니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날들을 말로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일 해가 뜨듯이 내 집안이 그와 같아야 한다고 믿으셨습니다. 이불을 개는 방식이 다르면 큰일이 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데에 마음 보태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곧 백무선 철길에는 복된 눈이 내릴 겁니다.’
그날 문상을 가며 교외선을 탔던 것처럼 이 어머니의 아들(함성호 시인)과 함께 언제 꼭 한번 함경도 백암에서 무산까지 눈 내리는 날 기차를 타고 싶다. 시인의 문상 답례 문자에 다시 경건하게 옷깃을 여민다. 삼가 근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