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상처 난 손

입력 2025-09-09 19:55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그의 손엔 상처가 가득했다. 사내의 거친 손등 위에서 가로와 세로가 서로 얽히다 못해 갈 길을 잃은 상흔에선 짜디짠 바다향이 묻어났다.

요즘은 병원마다 혈압을 잴 때 전자식 혈압계를 쓰기에 환자의 손을 볼 일이 드물지만, 가끔은 난 직접 수동식 혈압계를 이용해 혈압을 재곤 한다.

팔목에 검고 두꺼운 커프를 감고, 청진기를 커프 아래에 놓은 채 혈압을 측정하는 약간의 수고를 거치다 보면 자연스레 마주한 환자분의 변형된 손 모양이나 손에 남겨진 상처가 눈에 들어오곤 한다.

꾸밈없이 내놓은 손에선 그 사람의 삶이 읽힌다. 굵어진 손마디, 닳아버려 흔적조차 없어진 지문과 휘다 못해 부러질 듯한 손가락, 때론 있어야 할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손가락의 마디들.

한숨과 눈물을 가득 머금은 그 손들 하나하나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장편의 대서사시가 담겨 있다.

“이번에 둘째 자녀분이 대학에 들어갔다고 했지요?”

바다향이 묻은 손을 가진 남자의 눈동자가 빛났다. 대학에 입학한 큰 아이와 함께 두 아이 뒷바라지를 위해 늦은 시간 추가로 부업을 시작했다는 그의 거친 손에선 지난번보다 조금 더 높은 혈압이 측정된다. 어깨에 더해진 짐의 무게를 감당해 내기 위해 심장과 혈관이 버텨내야 할 몫인 셈이다.

등록금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의사로선 당연한 잔소리를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운동과 약을 꼭 챙겨 드시는 걸 잊지 말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수긍을 하는 그분의 상처 난 손위에 내 손을 얹는다. 맞잡은 두 손안엔 간절한 소원이 깃든다.

‘오늘도 힘든 하루를 무사히 잘 버텨내시길.’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한화는 오스탈 인수, HD현대는 기술 이식…조선 양강 마스가 속도
  • “10년 전 대출도 갚으라니”…세금·대출에 다주택자 버티기 임계점
  • 단독 ‘북한군 배치’ 보로네시에 러시아 특수부대도 연내 주둔
  • "'오디세이', 이 자리에서 보세요" [엔터로그]
  • '증조부 친일 의혹' 배우 하영의 스불재
  • 커피 더 팔리는데⋯한숨 깊어진 사장님 [커피공화국의 명암]
  • 성인 과반 "비만치료제 무료여도 사용 안 한다" [데이터클립]
  • 현대차 노조, 휴가 끝나자 파업 확대…12일부터 최대 6시간 부분파업
  • 오늘의 상승종목

  • 08.1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0,303,000
    • -1.64%
    • 이더리움
    • 2,646,000
    • -2.43%
    • 비트코인 캐시
    • 302,300
    • -0.89%
    • 리플
    • 1,414
    • -3.08%
    • 솔라나
    • 106,700
    • -1.57%
    • 에이다
    • 266
    • -3.97%
    • 트론
    • 468
    • +0.65%
    • 스텔라루멘
    • 228
    • -1.3%
    • 비트코인에스브이
    • 20,040
    • -1.96%
    • 체인링크
    • 11,920
    • +3.03%
    • 샌드박스
    • 57.25
    • -2.8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