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년배 친구라도 겉모습으로는 나이 차이가 나 보이기 마련인데, 이런 경향은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 각자 몸이 늙는 속도가 달라 누적된 결과다. 여기에는 선천적(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주로 후천적 요인, 즉 생활 습관 때문으로 예를 들어 흡연과 지나친 음주, 가공식품 섭취, 운동 부족은 각종 만성질환의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노화를 가속화시킨다. 따라서 건강을 위해서는 이와 반대되는 생활 습관을 꾸준히 실천해야 하는데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저속노화라는 용어(개념)의 등장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그런데 저속노화를 실현하는데 흡연과 폭음만큼이나 강력한 훼방꾼이 등장했다. 바로 폭염이다. 지구온난화로 폭염의 강도와 빈도, 지속 기간이 모두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사망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기에 더해 노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는 2008년부터 2022년까지 15년에 걸쳐 대만인 2만4900여 명을 대상으로 폭염과 생물나이 가속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생물나이란 간, 신장, 폐 등 장기의 기능,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등 각종 생물지표에서 산출한 수치로 신체나이라고도 부른다. 생물나이는 몸의 노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로, 실제 나이보다도 사망률을 더 잘 예측한다. 결국 저속노화란 생물나이의 시계가 느리게 흘러가는 현상인 셈이다.
폭염에 노출된 기간에 따라 네 그룹을 나눠 비교한 결과 기간이 긴 그룹의 생물나이가 연간 0.023~0.031년 가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15년 사이 폭염의 가속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었는데, 연구자들은 에어컨 보급률의 증가 때문으로 해석했다. 실제 가속화 경향은 야외 근로자와 농촌 주민들에게서 두드러지는데, 에어컨의 혜택을 덜 받아 폭염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된 결과로 보인다.
지난 2월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56세 이상인 미국 중노년을 대상으로 폭염이 생물나이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으로, ‘DNA메틸화’라는 최신 생물지표를 이용한 결과다. 나이가 듦에 따라 유전자의 DNA메틸화 정도가 변하는데, 그 패턴을 분석하면 생물나이를 추측할 수 있다. 폭염이 심한 지역에 살수록 DNA메틸화 변화 속도가 빠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일 기상청은 올여름(6~8월) 전국 평균기온이 25.7도로 역대 최고 1위를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세운 기록(25.6도)을 한 해 만에 갈아치운 것으로 평년(지난 30년간 평균)보다는 무려 2도나 높았다. 폭염일수도 28.1일로 평년보다 17.5일이나 많았다. 열대야일수도 크게 늘어 서울은 46일로 평년(12.5일)의 3.5배나 됐다.
사실상 매년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이로 인한 노화 가속화는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즉 여름을 날 때마다 몸이 폭삭 늙는 셈이다. 이를 만회하려면 저속노화의 생활 습관을 더 철저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잘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