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박덕배의 금융의 창] ‘장기연체 구제’는 사회적 포용과제

입력 2025-09-0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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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평가연구원 비상근연구위원/금융의 창 대표

단순한 빚탕감은 정책실효성 없어
경제활동 복귀와 사회통합이 목표
감면·고용 연계해 책임성 강화해야

작년 개인워크아웃 신청자가 10만 명을 넘으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 이후 장기연체자는 급증했고, 금리·물가 압박 속에 채무자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방치하면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소비 위축·노동력 이탈·불법사금융 확산으로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장기연체자 구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기채무 조정을 전담할 ‘배드뱅크’를 설립해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 채권을 매입·소각하거나 상환 부담을 줄이는 특별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캠코(자산관리공사)가 담당하며, 채권 매입 즉시 추심을 중단하고 소득·재산 심사를 거쳐 취약계층에 한정해 탕감을 진행한다. 총 113만 명, 16조 원 규모가 대상이다.

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도 확대된다. 2022년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하여 현재 이재명 정부에서 다시 강화되고 있다. 중위소득 60% 이하·채무 1억 원 이하 무담보 채무는 감면율을 최대 90%까지 높이고 분할상환 기간은 20년으로 연장된다. 출범 이후 누적 신청자는 14만 명을 넘었고 채무조정 규모는 23조 원을 돌파했다. 정권을 거쳐 살아남아 이제 이재명 정부에서 더욱 확장되는 제도라는 점이 중요하다.

성실 상환자를 위한 ‘신용사면제도’도 새롭게 시행된다. 2020년 이후 5000만 원 이하 빚을 전액 갚은 324만 명의 연체 이력이 삭제돼 신용평점이 오르고 금융거래 정상화가 가능해진다. 성실 상환자의 재기를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독자적 구상이다.

문제는 지속성과 공정성, 그리고 접근성이다. 정권 교체나 재원 여건에 흔들리면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채무를 끝까지 갚은 사람보다 연체자에게 혜택이 먼저 돌아가는 구조는 형평성 논란을 낳는다. 제도는 채무자가 직접 신청해야 해 고령층·정보취약계층이 소외된다. 더 근본적으로는 단순 탕감이 경제활동 복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용사면제도가 보완책이지만, 이런 한계를 해소하지 못하면 정책 신뢰도와 실효성은 약화될 수 있다.

해외 사례는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프레시 스타트(Fresh Start)’를 파산제도의 원칙으로 삼아 채무자에게 신속한 면책과 상담을 결합한다. 독일은 개인파산 제도를 통해 일정 기간 성실 변제 후 면책을 허용하며 재취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덴마크는 법원 주도의 채무조정이 장기적으로 소득 26% 증가, 취업률 11.7%포인트 상승 효과를 냈다. 공통점은 단순한 빚 탕감이 아니라 경제활동 복귀와 사회통합을 제도의 목표로 삼는다는 점이다.

한국에도 개인파산·개인회생 제도가 있어 일정 기간 변제 후 잔여 채무를 면책하는 장치는 마련돼 있다. 그러나 낙인과 절차 장벽이 크고 재취업·재활 지원은 내장되지 못했다. 채무정리에 그치고 사회적 복귀 장치가 부족한 것이 본질적 한계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조건부 감면과 재기지원 패키지를 결합해 책임성과 포용성을 담보해야 한다. 둘째, 복지·고용·금융을 통합한 원스톱 플랫폼을 구축해 채무조정과 직업훈련·생활지원이 자동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AI 상담을 확충하되 고령층·정보취약층을 위한 오프라인 창구를 병행해야 한다. 금융상담·교육이나 오프라인 지원은 서민금융진흥원이 이미 맡고 있지만, 조건부 감면이나 복지·고용 연계까지 포괄하지는 못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책은 기존 제도를 흡수·확장해 구조적 틀로 발전시켜야 한다.

장기소액연체 문제는 단순한 채권정리가 아니라 사회적 포용의 과제다. 배드뱅크와 새출발기금, 신용사면이 본격화되는 올해 하반기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완전하지 않지만 이미 시행되는 제도를 기반으로, 채무자를 다시 사회와 경제로 복귀시키는 장치가 제도화될 때 금융안정·경제회복·사회통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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