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아는 만큼 보인다?

입력 2025-08-2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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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Ev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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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할 때, 많은 이들이 큐레이터나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전시 개요나 작품 해설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으로서 정중하게 대접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시 감상에는 어느 정도의 설명이 필요할까?

여행지, 유적지, 전시실 등에서 사람들은 같은 대상을 마주하면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떤 이는 감동스러워하고, 어떤 이는 무심히 스쳐 지나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보는 것일까?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한다. 미술사가 유홍준의 책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문장은 문화유산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사전 지식이나 맥락을 이해하면 경험의 밀도가 훨씬 풍부해진다는 뜻이다.

통도사의 대웅전 앞에 섰을 때 ‘이곳에는 불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게 된다. 불상 대신 유리창 너머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보면서 가람 구조와 공간 배치, 더 나아가 불교 사상까지 읽어낼 수 있다. ‘앎’은 시야를 확장시킨다.

배흘림기둥의 곡선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구조적 지혜의 산물임을 알게 되는 순간, 눈요기를 넘어서 감상의 차원으로 들어간다. 지식은 정보가 아니라 ‘보는 방식’을 훈련시킨다.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지식이나 설명이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설명을 읽느라 정작 작품과 마주할 시간을 놓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 감상에 설명이 꼭 필요한 것일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 제목으로 잘 알려진 이 문장은 감상에 필요한 것이 반드시 지식만은 아님을 일깨워준다. 때로는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보이는, 감각의 열림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많이 알려고 애쓰느라 눈앞의 대상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지식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멈춤’과 ‘느낌’이다.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 연작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해설을 읽지 않아도 그 앞에 오래 서 있으면 화면 위의 색채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빛이 번져나가면서 마치 연못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에 빠진다.

자연이나 예술을 자신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는 것은 해석을 거치지 않아도 가능하다. 바람 소리, 나무 그림자, 붓 터치 하나가 마음을 흔드는 경험은 해석을 내려놓을 때 더 선명해진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섬세한 감흥을 해칠 수 있다.

탐구는 학자적 태도이고, 직관은 구도적인 자세다. 예술가는 구도자에 가깝겠지만, 보통 사람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각이 해석보다 먼저라는 점이다. 우리는 먼저 보고 감동하며, 그다음에 의미를 찾고 이해한다. 감동 없는 해석은 공허하고, 이해 없는 감정은 맹목이다.

그렇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대립하는 관점일까? 그렇지 않다. 지식은 해석의 도구를 제공하고, 감동은 본질을 깨닫게 한다. 감상은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문화유산이든, 예술작품이든, 자연경관이든 다르지 않다.

감상은 알수록 넓고 풍부해지고, 멈추면 더 밀도 있게 다가온다. 잘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느낄 줄 아는 태도다. 감상이란 단순히 눈으로 보는 행위가 아니라, 몸과 마음, 영혼이 하나가 되어 대상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지식은 이성을 깨우고, 멈춤은 감성을 연다.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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