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문화·자본 섞여 '脫국가화'
'서비스는 공짜' 깨야 산업 발전해

한국적 콘텐츠에 일본과 미국 기업이 돈을 대고 한국계 캐나다 감독이 제작해 미국의 플랫폼에 얹어져 전 세계에서 돈을 벌고 있다.
지난 6월 20일에 출시돼 화제를 몰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얘기다. 이쯤 되면 이 작품의 국적이 어디냐고 묻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싶다. 세계가 문화로 평평해졌다.
케데헌은 6월 20일 공개 후 첫째 주 920만 뷰로 2위에 오르더니 둘째 주에는 93개국에서 톱10, 31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1위이자 영화로는 역대 2위에 올랐다. 3인조 여성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곡 ‘골든’은 세계 최고 권위 음악차트인 ‘빌보드 핫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100’에서 동시에 1위에 올랐다.
K팝 역사상 미·영 차트 동시 1위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온라인에선 케데헌의 세계관을 분석하고 캐릭터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영상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이 하는 행동은 한국인 같지만 영어로 말하고 노래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 같은 어느 특정 국가의 몫으로 이해하기엔 케데헌의 ‘탈국가화’ 현상은 너무 두드러진다.
케데헌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 캐나다에 이민 가서 자란 매기 강이 기획하고 한국인 아내를 두고 있는 크리스 아벨한스가 나중에 합류해 K팝을 매개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문화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해 K컬처의 최고 고수들이 대거 동원됐다.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출신인 태미가 무술 감독을 맡았으며 안무는 스트릿우먼파이터의 리정이 책임졌다. 노래는 K팝 작곡가들이 만들고 K팝 가수와 미국인 가수들이 불렀다. 스토리는 서양의 악마사냥 개념에 한국의 무속신앙을 믹스했다.
한국적 ‘짬뽕’ 개념이 문화에 스며들어 K팝 아이돌의 퍼포먼스로 진화됐다.
케데헌의 제작자는 일본의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이다. 소니(SONY)는 우리가 기억하는 세계 최고의 제조업 명가였다.
라디오, TV, 워크맨에 진하게 남아 있는 오랜 정체성을 떨쳐버리고 콘텐츠 기업으로 과감히 변신한 결과물이 케데헌이다.
어찌보면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린 삼성이나 LG가 아니었으면 케데헌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기업의 변신은 즐겁다. 무궁무진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한때 우리 기업을 옥죄었던 업종전문화라는 구호가 얼마나 엉터리였나를 생각나게 한다.
소니의 변신은 기업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 변화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반기업 정서에 기만한 소위 ‘문어발 경영’이 특히 그러하다.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이 금융사업을 하고 책방에서 출발한 아마존은 우주 사업까지 진출했다.
소니는 현재 매출의 60%이상이 콘텐츠 부문에서 나오고 있다. 문어발이라면 성공한 문어발 경영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 가려면 나라마다 문을 두드리고 방송사 하나하나 계약해야 했다.
그래서 사기도 당했고 배 아픈 흥정도 참아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넷플릭스 하나로 전 세계에서 190개국에 동시 공개된다.
올해 들어 미국 할리우드에서 촬영에 들어간 영화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산업의 종가로 미국의 비중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넷플릭스라는 유통의 허브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조업의 성공으로 성장해 왔다. 서비스 산업을 제조업의 성장을 돕는 보조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비스는 공짜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는 제조와 서비스라는 두 개의 바퀴로 돌아간다. 낙후된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증대를 위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세계화가 확산되던 때 미국의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골든아치(맥도날드 햄버거)가 진출한 국가끼리는 전쟁이 없다고 했다. 같은 맛을 즐기며 평평해진 세계를 즐긴 덕이라고 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경제도 큰 성장을 했다. 그러나 트럼프 이후 벌어진 관세전쟁은 평평해진 세계에 다시 주름을 만들어 놨다.
그런데 케데헌이 나왔다.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같이 즐기며 크고 있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가 다시 평평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