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2 전투기, 러시아 1호기 호위하며 VIP 의전
동시에 B-2 폭격기 보여주며 푸틴 압박
푸틴, 평소와 달리 무표정 대신 미소
트럼프, 실망감에 공동기자회견서 3분 발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던 중 주변에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 (앵커리지/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미·러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두 정상이 6년 만에 대면하고 푸틴 대통령이 10년 만에 미국 땅을 밟았다는 점 등 여러 의미도 있었다. 옷차림부터 행사장에 적힌 문구까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회담 이모저모를 17일 조명했다.
회담 전부터 눈에 띄었던 부분은 미국의 VIP 의전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탑승한 러시아 1호기는 미군 F-22 전투기 호위를 받으며 알래스카에 진입했고 푸틴 대통령은 먼저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레드카펫을 걸었다. 두 사람은 미리 준비된 리무진 한 대에 통역 없이 함께 탑승했는데, 뉴욕타임스(NYT)는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15일(현지시간) 리무진으로 향하는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너머로 미군 F-22 전투기가 보인다. (앵커리지/타스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와중에 미국의 힘도 과시했다. 두 사람이 레드카펫을 걸은 뒤 연단에 도착할 무렵 알래스카 상공에선 B-2 스피릿 스텔스 전략폭격기와 F-35 전투기들이 시범 비행을 했다. 푸틴 대통령의 환영 차원이지만, B-2 폭격기는 최근 이란 핵시설을 공격했을 때 투입된 이력이 있다. 비행으로 인한 굉음에 두 정상은 걸음을 잠깐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연단 뒤로는 F-22 전투기가 도열해 있었다.
모처럼 미국 땅을 밟은 푸틴 대통령은 패션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인 부분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세심하게 배려했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파란 정장에 클래식한 붉은 넥타이로 화려함을 준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푸틴 대통령은 검은 정장에 진한 와인레드 넥타이 등으로 수수한 인상을 주려 했다. 닛케이는 “어떤 곳에서도 주인공이 되길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균형을 맞추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 앞서 자리하고 있다. (앵커리지/EPA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의 표정이나 자세도 평소와 달랐다. 회담 상대에게서 제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과거와 다르게 알래스카 회담에서는 미소 짓는 표정을 자주 보였다. ‘푸틴 타임’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회담 장소에 지나치게 늦게 등장하던 모습도 이번엔 없었다. 의자에 깊숙이 앉아 팔짱을 끼는 등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해오던 습관도 숨겼다. 대신 구부정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아 양손을 다리 사이에 놓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자세를 따라 하며 친밀감을 연출했다.
이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선 푸틴 대통령이 8분 30초 정도 발언한 것과 달리 3분여 정도만 말했다. 취재진 질문도 받지 않았다. 회담 전 즉각 휴전을 공언했던 그의 실망감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마주하고 있다. (앵커리지/로이터연합뉴스)
기자회견장 곳곳에는 ‘평화 추구’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걸렸다. 노벨평화상 수상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우크라이나 휴전 성패는 노벨평화상 행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닛케이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