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흑백논리와 싸우고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자신을 “무능한 엄마”라 단정지었고, 자신을 100% 실패한 존재로 여겼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럼 어제 아이와 웃었던 순간은 실패의 일부였을까요?” 그녀는 멈칫하다가 말했다. “그건… 좋았어요.” 회색이 스며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반면 또 다른 남성은 “저는 쓰레기입니다”라고 냉정히 말했다. 사업 실패, 가족과의 단절, 음주. 그는 자기 인생을 완전한 흑으로 규정했지만, 바로 그 단정이 그를 진료실로 이끌었다. “쓰레기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죠. 그런데 당신은 여기 왔잖아요.” 나는 그의 극단을 부정하는 대신, 그 논리 속에서 방향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회복의 여정은, 이발 한 번, 하루 금주, 가족에게 보내는 문자 한 통으로 이어졌다. “저는 지금 흰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흑백논리는 때로 사람을 상처 입히지만, 때로는 변화의 출발선이 된다. 정신과 진료는 그 이분법의 한가운데에서, 때론 회색을 함께 찾고, 때론 흑에서 백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북돋는 자리다. 인간은 단순함을 통해 살아남았고, 복잡함을 통해 치유받는다.
결국, 삶에는 회색뿐 아니라 모순이 존재한다. 흑백논리가 회복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그 틀에 갇혀 고통을 반복하기도 한다. 모순은 회피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인간 마음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진실의 한 형태다. 의사의 역할은 그 모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 속에서 환자가 스스로 균형을 찾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그 균형은, 언제나 흑도 백도 아닌 어딘가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흔들린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