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우리는 왜 읽지 않고 저장하는가

입력 2025-07-2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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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에디터 겸 디지털전략부장

과도한 자료수집…내용 안다고 착각
가짜뉴스에 취약해 ‘정보노예’ 우려
비판적 사유능력 ‘읽음’에서 시작돼

데스크톱에 쌓아둔 메모리, 휴대전화에 가득 찬 사진, 클라우드에 백업된 문서들….

저장한 정보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읽혔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호더’가 되었다. 읽지도 않은 뉴스와 글을 무심히 저장하거나 공유하며, 마치 이미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스크롤 몇 번, 클릭 없이 넘어가는 링크, 나중에 보려고 눌러둔 북마크들. 정보는 넘치지만, 기억에 제대로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와 하버드대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공유된 뉴스의 약 75%는 클릭조차 되지 않은 채 확산됐다. 제목만 보고 저장되거나 공유된 비율은 60%에 달했고, 레딧에서는 투표한 게시물의 73%가 클릭 없이 이뤄졌다는 연구도 있다.우리는 이제 ‘읽는 사람’이 아니라 ‘쌓는 사람’이 되었다. 뉴스는 참조되고, 유통되지만, 실질적으로 읽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저 본 것 같은 느낌, 안다고 믿는 착각 속에서, 뉴스는 기억보다 먼저 사라진다.

독서와 정보 소비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어떤 기사를 ‘읽었다’는 감각 없이, 단지 한 번 스크롤했거나 저장 버튼을 눌렀다는 이유로 내용을 안다고 착각한다. 그런 착각은 때로 ‘정보의 과잉’보다 더 위험하다. 그것은 지식이 아닌 환상에 가깝다.

디지털은 저장을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장이 곧 기억은 아니다. 오히려 저장은 종종 망각의 다른 말이 된다. 읽지 않고 저장하는 습관, 스스로 정보를 안다고 믿게 만드는 무의식적 위로는, 결국 기억되지 않는 시대를 앞당긴다. 게다가 이러한 ‘기억의 외주화(memory outsourcing)’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인지 능력 저하를 넘어, 정보의 진위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능력까지 약화시킨다.

이처럼 불필요한 정보를 쌓아두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디지털 호더들은,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나아가 특정 정보의 신뢰도를 의심하거나 출처를 확인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게 만들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조작된 가짜뉴스에 쉽게 노출되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겉으로는 방대한 정보를 소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보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 과잉과 저장 강박 속에서 우리는 ‘원문’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가기 쉽다. 뉴스는 원문으로 읽힐 때 비로소 맥락과 깊이를 갖는다. 단순한 요약이나 자극적인 제목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취재의 맥, 감정의 결, 사실의 밀도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읽었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소비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사안을 함께 사유한 경험이다. 문제는 지금의 뉴스 소비 행태가 이 경험을 건너뛴다는 데 있다. 특히, 정보의 맥락을 간과하고 단편적인 정보에만 의존하는 경향은 가짜뉴스와 같은 왜곡된 정보에 대한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짧은 요약만으로 판단할수록, 우리는 가짜뉴스에 더 쉽게 휘둘린다. 왜곡된 프레임과 선정적 의도는 표현을 타고 퍼지고, 그 결과 진실보다 확신이 먼저 유통된다.

정보를 저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소유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언젠가 나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지금은 감당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읽고 싶은 마음의 예비 동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언젠가’는 대개 오지 않는다. 저장된 수백 개의 링크가 말해준다. 남기고 싶은 욕망은 넘치지만, 결국 아무것도 읽지 않은 채 우리는 또 다른 링크를 저장한다.

비판적 사유와 지적 탐색은 읽음에서 시작되며, 정보는 쉽게 사라지지만, 한 문장은 오래 남는다. 지금 당신이 직접 읽은 이 문장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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