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의 다정한 백허그. 여성을 끌어안은 남성도, 그 감싸 안은 팔 위에 자신의 팔을 포갠 여성도 그저 이 이 순간이 행복했죠. 그들의 모습이 전광판에 잡히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 영상 봤어?” 전 세계 네티즌들을 열광케 한 2025년 최고의 영상이 떴습니다. 영상이 찍힌 장소부터 덧붙인 멘트, 한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사임과 끝나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기승전결. 엄청난 스토리. 그저 밈(Meme)이 되기에 충분했죠.

콜드플레이 콘서트 키스캠 영상은 단순한 콘서트 하이라이트가 아닙니다. 전광판에 잡힌 커플의 현장 반응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며 밈으로 폭주 중인데요. 그 짧은 10초의 영상엔 당혹감, 불륜, 도파민, 디지털 수치심, 윤리적 딜레마까지 모든 것이 녹아 있죠.
16일 미국 보스턴의 질레트 스타디움. 콜드플레이의 공연 중간, 무대 양옆 전광판에 키스캠이 떴는데요. 화면에 잡힌 커플 팬들의 애정행각에 환호하는 이벤트죠. 관중석 이곳저곳을 스캔하던 카메라가 한 커플을 잡았습니다. 한 남성과 여성이 다정하게 포옹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겼는데요.
그런데 이 커플, 뭔가 이상했습니다. 일반(?) 커플과는 달랐죠. 여성을 뒤에서 안고 있던 남성은 갑자기 움찔했고 여성은 당황한 듯 고개를 홱 돌려 얼굴을 가렸는데요. 주변 관중은 일순간 웃음을 터뜨렸고 이 장면은 고스란히 관중의 카메라에 담겨 전 세계로 송출됐죠.
커플의 이상한 반응에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은 마이크를 들었는데요.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y’re either shy…or cheating (수줍은 커플이거나…불륜 중이거나)” 그 한마디에 공연장은 폭소를 터트렸죠. 하지만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마틴의 통찰력을 칭송하는 글이 잇따랐는데요. 놀랍게도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SNS는 결국 이들이 누군지 밝혀내고야 말았는데요. 영상 속 남성은 미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아스트로노머(Astronomer)’의 CEO 앤디 바이런, 여성은 개인정보보호 최고책임자(CPO) 크리스틴 캐벗이었죠. 고위 간부의 데이트가 문제가 된 걸까요? 물론 아니죠. 바이런이 유부남이었거든요. 불륜 행각이 ‘잡힌’ 후의 결과는 빠르게 전개됐습니다. 바이런의 아내는 곧바로 SNS에서 남편 성을 삭제했고 계정을 비활성화했죠. 결국 CEO 바이런은 며칠 뒤 사임했고 캐벗은 ‘휴가 처리’ 상태인데요. 회사 측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터넷 세상은 단죄를 마쳤습니다. 공연장의 불청객 혹은 주인공인 이들을 말이죠.

이 완벽한 스토리를 놓칠 일 없는 네티즌들의 밈 가공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불륜‘과 생각지 못한 곳에서의 ’딱 걸림‘. 어느 하나 흥분을 내려놓을 수 없었죠. 세계인의 도파민이 폭발했는데요.
SNS와 틱톡, 유튜브에는 수천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과 밈이 쏟아졌죠. 쇼츠, 모션그래픽, 리믹스 클립, AI 재현 영상, 드라마틱한 OST 덧씌우기, 심지어 ‘지브리 스타일’ 애니메이션까지… 그 엄청난 속도에 소화가 어려울 지경이었죠. 난 5초짜리 영상에 각종 배경과 노래를 입혀 ‘넷플릭스 트레일러(Coldplay Kiss Cam Netflix Trailer.mp4)’라는 작품(?)까지 탄생하고야 말았는데요.
흥행작품은 후속작이 있어야겠죠. 불륜캠의 2막은 ‘결백캠’이었는데요. 미국 프로야구(MLB) 경기장에서 키스캠에 잡힌 커플들이 작은 팻말을 들고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그 문구는 이랬습니다
“이 사람은 제 아내입니다(This is my wife)” 혹은 “우린 법적 부부입니다!(We’re legally married!)”
그 매콤함에 어지러울 지경인데요. 이젠 당연한 듯 보이는 장면이 됐죠. ESPN,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스코트, 커플 유튜버들까지 이 유행에 합류했습니다.

이 밈은 챗GPT도 알아채고야 말았는데요. “콜드플레이 밈 알아?”라고 묻자 당연한 듯 불륜캠을 언급했죠. “콜드플레이 밈 그려줘”라는 간단한 물음에도 다정한 한 쌍(?)의 당혹감이 가득 담긴 그림을 익숙한 듯이 선보였습니다. 다소 순하게 그린 그림에 불만을 표하면 챗GPT는 더 당황스럽고 리얼한 버전도 뽑아냈는데요. 불륜의 민망함까지 시각화하는 AI, 도덕을 배우진 않았지만 감정은 아주 잘 그려냈죠.
이 밈은 월드스타 방탄소년단(BTS)도 당황시켰는데요. 팬 콘서트 투어 중인 멤버 진의 19일 미국 애너하임 콘서트 ‘몸으로 말해요’ 퀴즈 코너에서였죠. 진과 친분이 있는 콜드플레이가 제시어로 뜨자 한 커플이 해당 불륜캠을 재연한 겁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진은 이내 알아차린 듯 말을 이어가지 못했는데요. “콜드플레이”라고 정답을 외치면서도 진은 팬들의 순발력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장면은 ‘실제’라는 점이 이 모든 열광을 이끌었는데요. 영화나 드라마가 따라잡을 수 없는 사실감이었죠. 진짜였기에, 그리고 그 진짜가 실시간으로 전파됐기에 모두를 흥분시킨 거죠.
분명 그들의 명백한 잘못이긴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마냥 유쾌한 것만은 아닌데요. 일각에서는 ‘디지털 집단 린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죠. 결코 유쾌하지 않은 누군가의 사생활이지만 소비되는 방식이 ‘낙인’에 가깝다고 말입니다. 누군가의 표정 하나, 움찔한 손짓 하나가 0.1초 만에 해석되고 밈이 되는 과정에 실제 당사자의 허락이 배제되고 있다는 경고도 함께했는데요. 웃음이 비수를 품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를 곱씹을 필요가 있죠.
우리는 언제든 그 전광판 속 인물이 될 수 있는데요. 죄를 지은 자는 콘서트에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격한 교훈을 안긴 콜드플레이 불륜밈. 짧고도 강렬한 이 밈에 떨고 있는 그대. 이제 좀 덜 뻔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