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상법 개정안의 여러 이슈 가운데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전자주총 안건이 빠르게 통과돼 주주가치 확대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고 여기에 배당 관련 세제 개편이나 자사주매입 소각 의무화 등도 투자심리를 도왔다. 이러한 밸류업 정책이 앞으로 잘 추진된다면 시중 자금의 물꼬는 증시 쪽으로 더 강하게 쏠릴 것이다.
한국증시는 지금 말 그대로 재평가(re-rating) 과정 속에 있다. 국내 상장기업들이 매년 200조 원 정도의 순이익을 거두고 있기에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만 유지해도 5년 뒤엔 4000포인트 안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코스피 PBR이 1.25배로 높아진다면 그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것이고 경기까지 도와준다면 몇 년 내 5000포인트도 전혀 허황된 수치가 아니다. 다만 이런 낙관론이 현실화되려면 지금 회자되는 주주가치 개선 이슈 외에도 다음과 같은 요건들이 반드시 충족돼 시장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 한다.
첫째는 당장 눈앞의 관세 이슈가 과도한 인플레나 세계경기 침체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트럼프 정부의 평균 실효관세율은 각국과의 협상이 앞으로 잘 마무리된다 해도 10~15%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연초 3~4%보다 크게 오른 수치다. 하반기 중 미국의 전체 수입관세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경우, 물가와 시장금리 상승이 우려되고 전 세계 경기 위축이 우려된다. 우리나라도 25%의 상호관세와 자동차, 철강 등에 고율의 관세가 계속 붙는다면 수출과 생산 위축이 불가피하다. 그 결과를 아직 예단하긴 어렵지만 올가을 이후에 관세 발 악재를 훌훌 털고 가기를 기대해 본다.
둘째는 기업들이 계속 좋은 실적을 내줘야 하고 상장기업 전체 이익의 질이 좋아져야 한다. 기업들이 돈을 못 벌면 주주에게 보상할 재원도 줄어들고 주가수익비율(PER)이나 PBR과 같은 증시 프리미엄도 쪼그라들 것이다. 증시 전체의 기업실적이 좋아지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의 비중이 커져야 하는데 통상 고부가 산업은 고유 경쟁력이 강한 지식, 기술 집약적인 산업이 주를 이룬다. 이들 기업은 경기순환에 따라 이익 부침이 작아 주가 프리미엄이 높고 주가 변동성도 높지 않다. 반드시 첨단기술 산업이 아니더라도 좋다.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훌륭한 소비재 기업들도 증시의 질을 높일 효자 종목군이다. 이 두 번째 조건은 우리 증시가 보다 높은 지수대를 도전해 갈 때 투자자들이 어떤 종목군에 투자비중을 더 높일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셋째 한국 경제의 꿈의 기울기가 높아져야만 우리 증시가 제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단지 주주가치를 북돋는 정책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주가 레벨은 한계가 있다. 마침 새 정부 초기에 한국 경제의 장기성장 비전이 제시되고 그 기대감이 차곡차곡 결실을 본다면 자연스레 양질의 강세장이 연출될 것이다. 즉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청사진이 없이는 한국증시는 머지않아 추진력을 잃고 말 것이다. 그 첫 스텝은 뭐니뭐니 해도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 바이오 등 혁신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정부 지원, 규제완화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