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영업비밀 침해·시장 제한’ 주장
‘공정·투명한 기준’ 설득 준비해야

최근 미국 의회가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법’을 정조준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디지털 무역장벽(digital trade barrier)”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마치 한국이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을 겨냥한 규제를 도입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의 실체와 추진 배경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사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금 벌어지는 갈등은 디지털 주권 확립을 위한 정책적 정당성과 디지털 개방성 확대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국면이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수년간 논의돼 온 이 법안은, 검색 알고리즘이나 노출 순위 변경 시 입점 업체에 사전 고지할 의무를 부여하고, 계약 해지나 이용 제한 시 사유를 설명하도록 규정한다. 또한 자사 상품을 우대하거나, 입점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며, 전자상거래 중개사업자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법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분명하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입점 업체. 소비자, 배달·운송 노동자까지 플랫폼 종속에서 비롯된 불균형과 피해를 호소해왔다. 여기에 글로벌 플랫폼 기업인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의 입점 수수료, 노출 기준, 알고리즘 차별 등도 논란이 되며, 플랫폼 경제 전반의 공정성 확보가 정책 과제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법안이 자국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미국 하원의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는 이 법이 구글, 아마존, 애플 등 미국 대표 플랫폼 기업을 겨냥해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디지털 시장 접근을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알고리즘 변경 이력 공개나 자사 서비스의 노출 제한 등이 그 근거다. 미 무역대표부(USTR)도 한미 FTA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며 법안의 경과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 측 우려는 기술 기업의 경쟁력 관점에서 일정 부분 타당할 수 있다. 알고리즘은 플랫폼 사업자의 핵심 자산이며, 이를 과도하게 공개하라는 것은 사실상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법안의 본질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플랫폼법은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플랫폼 사업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며, 차별적 요소는 없다. 또 알고리즘 공개 역시 변경 사유와 영향 정도를 통보하는 수준이어서, 영업비밀 침해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이 법은 한국이 독단적으로 내놓은 규제가 아니다. 유럽연합은 이미 디지털시장법(DMA)을 통해 유사한 수준의 플랫폼 규제를 도입했고, 일본 역시 ‘특정 디지털 플랫폼의 거래 투명화법’을 시행 중이다. 한국의 법안은 이들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공정성과 투명성이라는 글로벌 규제 추세와 부합하는 방향이라 볼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이 문제를 통상협상과 연계한다면 우리 정부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미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유럽과 일본의 유사 규제를 인용해 국제적인 규제 흐름과의 정합성을 강조해야 한다. 둘째, 미국 기업들을 포함한 국내외 이해관계자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법안 시행령에서 유연성과 조율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USTR과의 협의 채널을 가동해 법안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통상 갈등의 확산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공정경쟁 규범은 이제 각국이 먼저 실험하고 제도화하며, 글로벌 질서로 수렴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다. 온라인 플랫폼법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이 이러한 전환기에 규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지, 아니면 외압에 밀려 중심을 잃을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정교한 법안 설계, 국제적 설명 능력, 이해당사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