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반쪽짜리 ‘GMO 완전표시제’는 부끄러운 돈자랑

입력 2025-07-0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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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명예교수ㆍ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발암·알러지 유발 근거 없는 ‘우려’
이력추적제도 빠져 실효성도 없어
유럽 전통농업 보호 의도 깨달아야

GMO(유전자변형식품) 완전표시제에 대한 전문가의 입장은 확고하다. 굳이 유럽의 값비싼 제도를 들여와서 식품 시장을 어지럽히고,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GMO 이력 추적 제도가 빠진 반쪽짜리 완전표시제는 소비자의 알권리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 생산·유통 현장에서 GMO 포함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식품과학회의 국제학술대회에서 재확인한 과학적 결론이다. 경제적 여유를 핑계로 GMO 식품을 차별화하는 시도는 유치한 ‘돈자랑’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GMO의 인체·환경 위해성에 대한 우려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GMO의 안전성은 전통적인 품종개량 방법인 육종 기술로 개발한 일반 식품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반복적으로 확인한 확실한 과학적 팩트다. 미국의 유전자 변형 기술을 끈질기게 거부하던 유럽의 과학계와 규제기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오히려 GMO 기술이 인류의 절박한 식량 문제 해결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GMO의 ‘발암성’이나 ‘알러지(알레르기) 가능성’을 앞세워서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가짜·유사 과학을 경계해야 한다. 사실 암은 대표적인 ‘만성’ 질환이고, 알러지는 개인 편차가 대단히 크다. GMO의 인체 발암성이나 알러지 유발 가능성을 떠들썩하게 걱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소비자 안심을 핑계로 삼는 ‘사전예방 원칙’도 적절하고 합리적 수준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현실을 포기할 수는 없다. 더욱이 물질의 정체만으로 독성·위해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해물질의 인체 독성·위해성은 ‘섭취량’이나 ‘노출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아무리 좋은 약도 지나치게 먹으면 독이 되고, 아무리 치명적인 독도 적당히 사용하면 약이 된다. 과식이나 편식을 피하는 수준의 노력만으로도 저독성 식품의 위해성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개인적 취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직화(直火)구이의 ‘불맛’을 즐기는 소비자는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벤조피렌의 위해성도 기꺼이 감수한다.

가공식품에서 GMO 성분을 확인하는 일이 도무지 쉽지 않다. 유전물질(DNA)의 확인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가공식품에서 GMO 성분을 찾아내는 일은 코로나19의 ‘진단키트’ 기술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유전물질이 남아 있지 않은 식품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GMO 표시의 객관적인 검증이 불가능하다.

모든 제도적 규제에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GMO 완전표시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 GMO 완전표시제를 거부하는 이유도 ‘GMO 이력 추적 제도’의 사회적 비용이 낭비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더욱이 고유식별코드를 이용한 이력 추적 제도가 빠진 GMO 완전표시제는 무의미한 속 빈 강정이다.

유럽연합이 부담스러운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면서 GMO 완전표시제를 운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소비자의 알권리는 대외적인 명분일 뿐이다. 사실은 미국의 GMO 기술로부터 유럽의 전통 농업을 보호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특히 곡물 자급률은 19.5%에 지나지 않는 우리에게는 완전표시제를 고집할 명분이 없다. 유럽이 장에 간다고 우리도 빈 지게를 지고 따라나설 이유가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 언뜻 ‘알권리’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성분’이나 ‘원산지’ 제도가 우리의 실질적인 알권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포장지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성분 목록을 실제로 활용하는 소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GMO 완전표시제는 현실적으로 아무 편익을 기대할 수 없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일 수 있다.

윤리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전 세계 80억 명의 인구 중 10%가 하루 세끼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유엔이 강조하는 17개 SDG(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도 ‘가난’과 ‘굶주림’의 해결이 우선순위가 가장 높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우리가 반쪽짜리 완전표시제로 GMO 기술을 거부하겠디는 시도는 반(反)인륜적인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가짜·유사과학에 끌려다녔던 염색샴푸의 경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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