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며 느낀다. 현대인은 첫 번째 행복엔 익숙하지만, 두 번째 행복은 낯설어한다. 21세 수민(가명)도 그랬다. 휴학 중이라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고,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새벽에 잠드는 생활. 대화 중 그는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힘든 건 무조건 싫고, 뭐든 오래 걸리면 포기하게 돼요.”
나는 그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오늘부터 한달간만, 매일 아침 일어나서 아파트 계단을 20층까지 걸어 올라 보세요.” 그는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그걸 왜 해요?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의미는 나중에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
처음 며칠은 온몸이 쑤셨다고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헉헉대며 계단에 주저앉고 싶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계속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20층 옥상 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볼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들어 온다고 했다. 2주쯤 지나자 그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이상하게요… 요즘은 의욕이 생기고 자신감도 조금….” 그 뒤로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계단을 올랐고, 샤워 후에 책상 앞에 앉았다. 자격증 책을 꺼내고 하루에 한 단원씩 읽기 시작했다. 반년 정도 지난 후, 그는 평생 처음으로 자격증 하나를 획득하였다. “이제는 뭔가 하나씩 하나씩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는 그날 다시금 확신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즉각적인 희열이 아니라, 스스로 통과해낸 고통 속에서 발견한 성취감이라는 걸. 이 두 번째 행복은 느리지만 깊고, 불안한 마음을 단단하게 다듬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또 다른 수민에게 말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 고통을 넘는 순간, 당신은 몰랐던 자신의 다른 모습을 꼭 만나게 될 겁니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