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이 하나인데 신부예요. 지금 일본에 있어요. 일본에 가면서 저한테 어머님 좀 부탁한다고 했거든요.”
80세 할머니가 들려준 사연이었다. 어느 날 96세 할머니가 배가 아프다고 하자, 80세 할머니는 자신이 다니는 우리 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내가 준 약이 잘 맞았던 모양이다. 그 뒤로 96세 할머니는 몸이 조금 불편하면 80세 할머니에게 부탁해 나를 찾았다. 할머니는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아들이 잠시 한국에 나왔을 때는 할머니를 통해 일본 과자를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며칠 전, 배가 아픈 할머니는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왔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할머니를 진찰하고 처방전을 드렸다. 진료가 끝나자 아들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어머니를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며 일본 초콜릿을 건넸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그가 신부라는 것이 생각나 나가려는 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교황 레오 14세 선출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회의에서는 모든 후보자가 교황이 되는 것을 마다했다고 한다. 교황이 선출되고 대중과의 첫 만남에서 레오 교황이 보인 엄중한 표정은 뒤에 서 있는 후보자들의 밝은 미소와 대비되었다. 사제의 길이란 그런 것일까? 마다하고 싶고 거절하고 싶은 길인데 그래도 가야 하는 것일까? 홀로 남은 노모를 두고 떠나는 마음은 어떨까? 그런 길을 가는 아들을 위한 96세 노모는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본인도 고령인데 같은 성당 이웃을 기꺼이 돕는 80세 할머니의 마음도 정성이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이들을 보며 신을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