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다섯 해 전 ‘장자’를 처음 읽었다. 그 전에는 관심을 가진 적도, 노장(老莊) 철학이 태동하는 역사 배경을 알지 못했다. ‘장자’가 위진 시대의 곽상(郭象)이 주석한 판본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노장 공부는 그 뒤로 10여 년간 이어졌다. 그 사이 내 안의 형질은 많이 바뀌었다.
경기도 남단의 소도시로 이사하면서 자주 해발 400m의 능선을 따라 걸었다. 배낭에는 물 한 병과 오이 하나가 전부였다. 걷다가 오이를 씹고 물을 마셨다. 바람 소리에 귀가 먹먹하던 날도 있고, 시야가 탁 트여 맞은편 숲머리가 바람에 한 방향으로 쏠리는 맑은 날도 있었다. 경기 남부 식물 생태계로 울울창창한 숲은 바람에 따라 군무를 추었다.
그 광경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시골의 어둠은 빨리 내리는데, 그 어둠은 칠흑 같이 검고 깊다. 간간이 수컷 고라니가 허공을 할퀴듯 날카롭게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혼자 밥을 끓이는 고적한 시골생활 중 ‘장자’를 옆에 끼고 읽노라니 세월이 흘렀다. 그 시절이 내 인생의 가장 고요한 날들이었으리라.
장자는 기원전 4세기 경 송나라 몽현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장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진나라 들이 각축을 하던 난세였다. 당대 주류는 주나라 문화였고, 송나라는 상나라의 영향 아래에 있는 변방이었다. ‘노장’을 하나로 묶지만 둘은 도와 자연에 중심을 둔다는 것 말고는 시대나 인격, 그리고 말의 형식과 내용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노자가 시적으로 함축한다면 장자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도덕경’이 여든한 편의 추상적인 도를 노래하는 시다. 반면 ‘장자’의 내편, 외편, 잡편에 일관하는 서술 원칙은 우화라는 형식이다.
‘장자’는 ‘소요유(逍遙遊)’ 편이 마음에 울리는 바가 컸다. 무한 시공을 아우르는 장대한 규모와 그걸 꿰어내는 놀라운 상상력 때문이었다. “북명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은 곤이다”로 시작하는 ‘소요유’편을 따로 떼어서 달달 외울 만큼 읽었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변화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곤은 변하여 붕이 되고, 붕은 돌연 구만 리 장천으로 떠올라 여섯 달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남명으로 날아간다. 붕새의 두 날개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바다를 덮을 지경이니 그 크기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이 붕새의 느긋하고 자유로운 비행에 ‘장자’의 철학이 집약된다면 나머지는 곤과 붕새에 대한 주석에 지나지 않을 테다.
어쨌든 노장 공부는 마흔 줄에 들어선 내 수양에 보탬이 되었다. 세상에서 모욕을 당하고 내쳐졌으니, 내 안에는 분노와 적대감이 있었다. 원한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노장을 읽으며 아프게 깨치며, 내 말과 행동을 돌아보았다. 타인을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착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다 노장 공부가 준 선물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에 혼란이 밀려오고 급급해질 때 망설이지 않고 다시 ‘장자’를 꺼낸다. 들숨과 날숨의 리듬을 가지런히 하고 ‘장자’를 읽다보면 안 보이던 길을 찾을 듯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