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는 공개석상에서 워라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 하지 말라. 이 두 가지 중 한쪽을 추구하면 다른 한쪽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균형이 아닌 일과 삶의 조화를 뜻하는 ‘워라블(Work Life Blending)’을 강조했다.
워라밸의 함정은 ‘일과 삶을 분리’한다는 데 있다. 즉 일(Work)은 오래 안 하면 안 할수록 좋은 것, 최대한 적게 해야 하는 것이고, 삶(Life)은 길면 길수록 좋은 것, 어떻게든 쟁취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마치 일과 삶을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이미지로 치환해 사람의 무의식에서 이 둘을 ‘일=나쁜 것’, ‘삶=좋은 것’ 식으로 정립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이 ‘워라밸’이 사람들에게 행복의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함정이다.
반면에 ‘워라블’은 일과 삶을 분리하는 개념이 아니다. 나아가 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실제로 일은 우리 인생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높은 삶의 만족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하는 일로부터 자아실현과 성취감을 얻는다.
‘인공지능(AI) 강국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가 선결과제다. 10만 개, 20만 개 단위의 구체적 물량까지 제시하고 있다. GPU는 AI에 각종 데이터와 자료를 학습시키는 데 없어선 안 될 장치다. 고성능 칩셋은 장당 5000만 원을 넘는 고가여서 20만 개를 사려면 10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빅테크들의 입도선매로 올해 계약분은 사실상 마감된 상태다. 오픈AI 대주주 마이크로소프트는 15만 개를 확보해 놓고도 추가 주문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가 뒤늦게 돈 보따리를 싸들고 가도 20만 개 같은 규모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앞세워 엔비디아 본사를 여섯 차례나 방문한 끝에 계약한 물량이 10만 개 남짓이라고 한다. 현재 국내에 반입된 물량 2000여 개는 초보 단계이다. 우리가 ‘워라밸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AI의 글로벌 바깥세상은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선 정국에서 비전으로 제시되는 ‘AI 강국론’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챗GPT, 딥시크 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을 보유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모델을 모든 산업에 이식 및 접목하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유력 대선 주자의 ‘전 국민 기본 AI’라는 구호까지 접하면 더 오리무중이다.
AI 강국을 내건 후보들은 인공지능 시대 주 4일 근무의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워라밸부터 청산해야 한다. 인공지능 기반 신(新)문명은 게으른 민족과 국가에 결코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주 4일이 아니라 ‘인공지능 전환’이 먼저다. 우리는 선발주자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 한국은 구글, 애플처럼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만들지 못했지만, 반도체와 하드웨어로 디지털 변환 시대를 살아냈다.
문제는 AI 시대에는 이런 분업적 칸막이(silo)가 없다는 점이다. 자율주행 로봇 소프트웨어가 모두 한 덩어리다. 상용화 구간에서 한번 밀리면 만회가 어렵다. 그야말로 굴종과 예속의 길이다. 그러므로 ‘AI, 시스템 로직 반도체, 그리고 에너지’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이다. 이미 온 미래에는 AI가이 인터넷처럼 모든 분야에 깔릴 뿐만 아니라 인터넷도 AI 기능이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중국과의 돈(자본) 싸움은 승산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람과 시간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핵심역량이자 자원이다. 따라서 AI 강국으로 가는 길은 GPU 확보가 아니라 GPU와 밤새 씨름할 수 있는 우리 국민, 사람에 달려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AI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해외 언론이 먼저 걱정하는 현실이다. 후보들은 나날이 줄어드는 이공계 우수 학생과 해외 탈출에 골몰하는 연구개발(R&D)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인구·자원이 많은 나라는 좀 놀아도 된다. 글로벌 인재를 쓸어 담는 빅테크 기업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 연구원들만 땡 하고 칼퇴근이다. 이번 금요일 연차를 쓰면 내일부터 또 3일간 황금연휴다. AI 패배국에는 이런 워라밸의 함정이 후회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인공지능 전환을 통해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실현하고 싶다면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이 아닌 일과 삶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블렌딩(blending)’하여 융합과 조화를 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워라블’이자 치명적 함정을 극복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