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약에 또 제동이 걸렸다. 신규 원전 최종 계약 체결이 10월 이후로 지연될 수 있다는 얘기가 현지에서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8일 언론 질의에 “(계약 관계는) 당초 일정대로 진행하겠다는 것이 기존 입장”이라고 일축했다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앞서 27일(현지시간) 체코 공영 라디오주르날과 인터뷰에서 “두코바니 원전 2기 완공 계약이 오는 10월 총선 이전에 체결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을 받고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는 모든 숙제를 다 했고, 이제는 법원의 손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체코전력공사(CEZ)는 이달 7일 한수원과 신규 원전 건설 계약 서명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체코 지방법원은 경쟁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제기한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중단하라며 가처분을 인용했다. 한수원은 계약 체결 금지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체코 최고법원에 항고한 상태다.
K-원전에 밀려 입찰에서 탈락한 EDF는 계약 절차 공정성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유럽연합(EU)도 한수원이 역외보조금규정(FSR)을 어겼다며 EDF를 거들고 나섰다. EU는 심층조사에 들어갈지를 검토하고 있다. 2023년 7월 시행된 FSR은 EU 역외 기업이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과도한 보조금을 받고 공공입찰에 참여하면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한다. 지난해 심층조사를 받은 중국 업체들이 잇달아 입찰을 자진 철회한 사례도 있다.
한수원은 보조금을 받지 않았으며, 체코 원전 입찰은 2022년 3월 개시돼 FSR 적용대상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EU가 심층조사를 개시하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부담이 가중되고 변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한수원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놓였다. 체코 원전 시장은 EDF의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다. K-원전에 안방을 내줄 경우 후속 파문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의식해 끝까지 시비를 걸 개연성이 많다. 방심은 금물이다.
원자력 르네상스가 개막을 앞둔 현실도 엄중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제는 원자력 시대”라고 선언하고 원전을 향후 25년간 4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미국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원전 투자 청사진을 마련 중이다. 그 막후에선 원전 건설 경쟁도 뜨겁게 펼쳐진다. EDF 소송전을 지켜보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5일 베트남·인도네시아·싱가포르를 순방하는 ‘원전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국가 수반이 직접 선수로 뛰는 것이다. 앞으로 인공지능(AI) 경쟁 격화와 더불어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정부와 기업이 이인삼각으로 뛰는 막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체코는 K-원전의 유럽 진출 교두보다. 세계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역으로 보면, EDF가 순순히 포기할 리 없다. 비상 대응이 필요하다. 6월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총력 지원에 나서야 한다. 개별 기업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계약의 원안 체결이 일차적 목표다. K-원전이 한국 경제를 되살리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명심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