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조 원 규모의 새 원전을 한국 기술로 짓게 됐다.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은 1000MW(메가와트)급 원전인 두코바니 5·6호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주처인 원자력발전사(EDUⅡ)와 한국수력원자력 간의 신규 원전 2기 계약 체결식이 7일 프라하 현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합 끝에 앞서 지난해 7월 체코 원전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골인 지점이 이제 눈앞이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의 두 번째 초대형 원전 수출 성공이다. 한수원을 주축으로 한 ‘팀 코리아’의 개가다.
유럽·미국에서 건설된 원전에 비하면 수주 단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2012년 착공한 미국 보글 3·4호기의 절반 수준이고, 2007년 착공한 프랑스 플라만빌 3호기와 비교해도 30%가량 낮다. 이를 겨냥해 ‘저가 수주’ 논란을 키우며 발목을 붙잡은 사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음모론일 뿐이다. 미국, 프랑스 등이 따라올 수 없는 K-원전 경쟁력을 웅변하는 지표여서다. 찬사를 받을 지표인 것이다. 이를 놓고 정반대로 비난과 음해를 일삼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K-원전이 껄끄러운 해외 경쟁사라면 모르지만, 국내에서 음모론에 맞장구를 치거나 부채질하는 이들은 대체 뭔 부류인지 모를 일이다. 프랑스 경쟁사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건가.
앞으로 주목할 것은 현지화 비율과 웨스팅하우스 문제다. 체코 정부는 지난해 우선협상자 선정 당시부터 꾸준히 체코 기업의 60% 이상 참여를 요구했다. 현지화 비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가져가는 몫은 달라질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 변수도 수익성을 좌우할 수 있다. 올 1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지식재산권 관련 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일각에서는 한수원의 일감 일부를 웨스팅하우스에 넘겨주거나, 로열티를 지급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보고 있다. 주력 시장을 나누는 이면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번 계약은 K-원전이 유럽에 처음 진출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시기적으로도 유의미하다. 환경 근본주의에 떠밀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치중하던 유럽 사회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고, 영국은 원전 발전량을 4배로 늘리기로 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확산과 더불어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근원적 질문이 부상하는 시대 흐름과 무관치 않은 변화상이다. 최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교통·통신·금융 등 인프라를 마비시킨 최악의 정전 사태가 벌어진 것도 눈길을 더한다. K-원전 입지가 크게 넓어질 개연성이 있다.
이번 개가는 과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폭주로 사실상 초토화됐던 국내 원전 생태계를 정상화할 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4류 정치가 또 어깃장을 놓으면 K-원전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6월 대선의 유력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원전 혹은 탈원전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인 것은 적잖게 걱정스럽다. 4류 정치가 K-원전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빌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