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인코넬이란 합금을 보면서 청동과 황동이 떠올랐다. 원자력발전소는 높은 온도와 압력에 견디는 합금을 사용한다. 특히 증기발생기는 원자력을 증기로 바꾸는 장치인데 관의 길이만 270㎞ 정도이다. 만일 한 지점에서 누수가 일어나면 깨진 관을 막아야 하니 내구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찾은 합금이 인코넬이다. 인코넬은 주재료인 니켈에 크롬 15%, 철 6~7%, 티탄 2%를 함유한 합금으로 섭씨 900도까지는 외형을 유지하고 화학 침식에도 강하다.
합금의 단단함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구리도 무르고 아연도 무르고 주석도 무른데 청동과 황동은 딱딱하다. 인코넬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지식인에 따르면 합금은 금속 격자에 다른 원자가 박혀 미끄러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자갈과 철근을 넣은 시멘트 벽, 짚을 넣은 황토벽을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그렇지만 반대 비유도 가능하다. 지면에 돌멩이를 뿌리면 이동은 저지되지만 통나무를 깔면 이동이 원활할 수도 있다.
여기에 답하려면 금속을 원자 수준에서 살펴봐야 한다. 금속 원자는 무거운 원자핵에 풍부한 전자를 지니고 있다. 전자들이 원자핵 사이를 매개해 원자핵이 금속 격자를 이룬다. 섭씨 1000도 이상 가는 금속의 녹는점은 격자의 단단함 증거이다.
금속 원자핵을 하나하나 분리하기 어렵다고 원자핵 재배치마저 어려운 것은 아니다. 금속을 가벼운 망치로 두드려도 금속은 얇게 펴진다. 강한 자석에 붙어 떼어 내기 어려운 쇳가루도 표면 따라 쉽게 이동하듯이 순수 금속의 원자핵도 쉽게 재배치된다. 이는 원자핵 결합에 불참한 일부 전자들 때문이다. 자유전자라고 하는 이 전자들은 전선에서 전류를 전달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석 표면에 흙먼지를 뿌려보자. 쇳가루 이동은 흙먼지로 지장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순수 금속에 첨가된 원자는 금속의 재배치를 방해한다. 첨가된 원자는 순수 금속의 원자 크기와 달라 격자의 비틀림을 유발하고, 이는 금속 격자의 재배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격자 비틀림은 다른 원소를 섞어도 일어나지만 가공과정에서 유입되기도 한다. 풀무에 달구어 찬물에 담금질한 강철은 딱딱하지만 천천히 식힌 강철은 무르다. 급격한 담금질은 비틀림을 촉진시키고 느긋한 풀림은 비틀림을 완화시킨다.
금속 소재는 합금을 통해, 가공 과정을 통해 비틀림을 늘 지니고 있다. 여기에 하중을 가하면 새로운 비틀림이 일어나고 기존 비틀림과 상쇄되면서 하중은 흡수된다. 확률적으로 가능성은 낮지만 비틀림 방향이 같으면 파괴와 균열이 촉진될 수도 있다. 정교한 이론과 끝없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금을 만드는 연금술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118개 원소로 만드는 합금술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인류 역사 초기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나눠졌지만 근대 이후 역사는 재질에 따라 나누지 않는다. 반도체 기술, 플라스틱의 기술 시대라는 주장은 일부분만 맞다. 현대 장비는 수동적 소재에 능동적 부품을 결합하여 제작되므로 소재만을 지칭하기 어렵다. 또한 한 기기에 수천 개 부품이 사용되므로 특정 부품만을 대표 재질로 지명하기 어렵고 이제까지 개발된 합금의 종류도 너무 많다.
수동적 소재보다는 능동적 기술이 요구되는 시대지만 소재는 경시될 수 없다. 우주로 나아가고 원자력, 핵융합의 극한 환경에서 작동하려면 첨단 소재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관세를 통해 세계 경제를 재편하려는 트럼프의 관세 공격을 막으려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방패일 수 있다. 관세는 거시적이지만 변동적이고 소부장은 미시적이지만 영속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