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클라우드 시대 주목받고 있는 해저케이블은 '안보 격전지'로도 떠올랐다. 세계 각국에서 정부 차원의 투자 및 안보 강화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세계 각국 정부는 해저 케이블 산업 지원과 안보 정책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해 11월 해저케이블 규칙을 개정안을 마련하고, 다음 달까지 법안 관련 의견을 받는다. 개정안은 EU 회원국 및 미국의 동맹국에 신뢰할 수 있는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강조하며, 중국산 해저케이블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미국이 법 개정에 나서는 건 세계 곳곳에서 해저케이블 고의 절단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매년 약 200건의 크고 작은 케이블 고장이 발생하는데, 지난해 말부터 대만 해협과 발트해 등지에서 고의로 해저케이블이 절단됐다는 의혹이 연달아 제기됐다. 배후로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거론됐다.
연이은 고의 절단 의혹에 유럽연합(EU)은 올해 초 해저케이블 보호를 위해 10억 유로를 출연하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는 10억 유로를 해저케이블 감시 강화와 비상 수리 선박 함대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헤나 비르쿠넨 EU 기술주권·안보·민주주의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케이블 사보타주(파괴 공작)를 예방·탐지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억제·복구·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다"며 "예산에서 10억 유로를 재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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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저케이블의 국내 생산 및 설치를 위해 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 총무성과 경제산업성은 내년부터 해저케이블을 증산하는 기업에 설비투자 보조금을 제공한다. 또, 수백억 엔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선박 구매에 정부 자금 일부를 보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우리 정부는 탄핵 정국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해저케이블에 대한 물리적·사이버 위협 실태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현재 실태조사 포함한 정책연구가 진행중이고 곧 마무리된다"면서 "조만간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정부는 해저케이블의 안정성 확보 개선방안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해저케이블 통신 자원이 안보 자산으로 급부상한 만큼, 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성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데이터의 99%가 해저케이블로 움직인다. 국가의 군사 작전이나 동맹국 간 협상 이런 것도 다 해저케이블에 의존하고 있다"며 "누가 의도를 가지고 한국의 해저케이블을 공격할 경우 굉장히 취약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원 연구위원은 "아직 한국 해저케이블의 피해 사례가 많이 없어서 이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며 "범부처 간 협력 프로토콜이나 가이던스가 필요하다. 또 다른 나라와 다자협력해 공동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원선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해저케이블 연결 자체가 중국, 대만 중심이다. 그래서 유사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해저케이블은 국가 전략 인프라로써 다른 국가와 네트워크 (보호를 위해)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