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지금, 너무 완벽히 닫힌 세포가 아닐까. 자신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차단해 버렸다. 진보는 보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보수는 진보를 두려워한다. 경계는 점점 두꺼워지고, 그 사이에 흐르던 인간적인 온기는 서서히 사라졌다.
정신과 의사인 나는, 갈등과 단절이 만들어낸 상처들을 매일같이 들여다본다. 몇 해 전, 한 부부가 내 진료실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래된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 사람은 늘 제 말을 흘려듣기만 해요.”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편은 고개를 돌린 채 중얼거렸다. “당신은 항상 나를 비난하잖아. 더는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어….”
나는 그들에게 ‘역할 바꾸기’라는 조심스러운 제안을 건넸다. 아내는 남편이 되어 그의 하루를 말해보고, 남편은 아내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이다. 처음엔 흉내 내기처럼 시작되었다. 아내는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늘도 회사에서 욕먹고 돌아왔는데, 집에 오면 잔소리뿐이야.” 남편은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나는 온종일 아이와 씨름했는데, 당신은 한 번도 ‘수고했다’고 말해준 적 없어.”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의 눈동자에 작은 물기가 번졌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외로워하는 줄 몰랐어.” 아내의 목소리는 떨렸고,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당신이 그토록 지쳐 있는지 생각 못 했어.” 말을 바꾸자, 마음이 움직였다. 타인의 언어를 입에 담자, 그제야 진심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마음의 세포막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지금 우리 사회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각자의 진영에 갇혀, 자신의 말만 정답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하나의 얼굴만 가지고 있지 않다. 진보의 눈으로 보이는 정의가 있고, 보수의 가슴으로 느껴지는 진실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느 쪽이 옳은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눈으로 세상을 한 번쯤 바라보는 일이다. ‘역할 바꾸기’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잠시 살아보는 연습이다. 그것은 경계 바깥의 온도를 느끼는 일이다. 그것은 ‘나’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잠시 걸어나와, ‘우리’라는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일이다.
세포막은 생명을 지키되, 생명을 소통하게 한다. 닫히되, 완전히 닫히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한 세포의 조건이듯, 건강한 사회 또한 그렇게 숨을 쉬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세포막 너머로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손끝에 닿는 따뜻함이야말로, 얼어붙은 이 시대를 녹이는 첫 햇살이 될 것이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